‘괸당’은 친척 또는 이웃사촌을 뜻하는 제주어이다. 보통 친척은 혈연관계만을 한정 짓는 단어이므로, 이웃사촌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으나 지연, 학연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괸당’은 마땅히 대체할 단어가 없기도 하다.
제주어 연구에 평생을 바쳤던 제주대학교 초대총장 故현평효 박사는 제주어사전(1995년)에서 ‘괸당은 돌보는 무리라는 뜻인 권당(眷黨)의 제주어 표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제주속담 연구자이기도 한 제주대학교 고재환 명예교수는 제주도속담사전에서(1999년) ‘괸당은 친족과 외척, 고종, 이종 등 멀고 가까운 친척을 두루 일컫는다’라며 이들은 집안에 혼례나 장례를 비롯해서 집안에 관심사가 있을 때 모여들어 서로 돕고 걱정하며 정분을 돈독히 하는 것이 관습화 됐다고 했다.
제주 괸당 문화를 알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는 ‘제사문화’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사는 식구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참여해 조상에 제를 올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제주에는 참여하는 대상이 조금 다르다. 가까운 친척은 물론이거니와 근방에 거주하는 아주 먼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들까지도 함께 불러 제사를 지내고 식사를 하곤 한다. ‘괸당’이 함께 제사도 지내고 밥도 나눠먹고 돌아가는 길에는 쌀이나 술, 빙떡 등을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 제주만의 풍습인 것이다.
그밖에도 제주의 어르신들을 마주치게 되면 ‘어느 동네, 어느 학교, 부모님은 뉘시냐, 무슨 일 하시냐’ 등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괸당’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제주는 타 지역에 비해 인구가 적은 편이고(약 67만명), 섬이기 때문에 대부분 한 다리만 거치면 아는 사이인 경우가 많다. 마치 뒷조사를 하는 듯 질문이 많은 것 역시 어느 집 누구인지 알면 그 집 사정을 대체로 파악할 수 있어 도움을 주거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한다.
제주의 정통가옥 앞에는 특이한 대문이 있다. 대문 위치에 세운 큰 돌 혹은 나무(정주석, 정주목) 사이에 나무 기둥 세 개를 걸쳐놓은 것으로 이를 ‘정낭’이라 부른다. 대문이라 부르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이다. 오늘날 대문이 타인의 접근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면, 옛 제주에서 이 정낭은 우리 집 마당이 여기까지라는 간단한 표식에 불과한 것이다. 더불어 이웃들에게 집 주인의 소재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낭 3개가 가로로 모두 걸쳐져 있으면 ‘좀 멀리 갔어요’, 2개가 걸쳐져 있으면 ‘저녁때쯤 돌아와요’, 1개만 걸쳐져 있으면 ‘금방 돌아와요’라는 의미이다. 한 개도 걸쳐져 있지 않으면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제주 가옥에 일반적인 대문 대신 정낭이 있었던 이유는 잦은 태풍으로 인한 풍압을 막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소나 말 등 방목하는 가축들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했다.
자물쇠 하나 걸어두지 않고 나무 막대기로 부재중을 표현했던 제주도의 정낭 문화에서 이웃 간에 얼마나 친근하고 믿음과 신뢰가 두터웠는지 알 수 있다.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지키고 보존해나가야 할 제주만의 전통문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