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닥한 제주 마을

제주 바다의 관문, 건입동
제주시 건입동
제주 구도심의 대표 마을로 건입동이 있다. 항구가 발달해 어로활동의 중심지, 상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건입(健入)동의 원래 명칭은 ‘건들개’로, 들고 나는 바다 관문의 성격과 배가 오고 가는 포구라는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건들개’ 건입(健入)동은 제주항을 중심으로 상업을 위주로 하는 마을이면서 사라봉, 금산수원지 생태공원, 산지천이 위치한 도심 속 자연생태마을이다.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제주 공감곱닥한 제주 마을 (아름다운 제주 마을)
제주 바다의 관문, 건입동 제주시 건입동
제주 구도심의 대표 마을로 건입동이 있다. 항구가 발달해 어로활동의 중심지, 상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건입(健入)동의 원래 명칭은 ‘건들개’로, 들고 나는 바다 관문의 성격과 배가 오고 가는 포구라는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건들개’ 건입(健入)동은 제주항을 중심으로 상업을 위주로 하는 마을이면서 사라봉, 금산수원지 생태공원, 산지천이 위치한 도심 속 자연생태마을이다.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도심 속 생태공원 금산수원지

유독 눈이 없는 겨울, 따듯한 햇살의 기운이 온몸 가득 스며든다. 꼭 봄날 같기만 한 겨울이다. 무리 없이 걷기에 좋은 날, 공덕동산을 천천히 내려오며 도심 속 금산수원지 생태공원을 찾아간다. 공덕동산은 경사가 급한 바위 위에 놓인 도로이다. 이곳은 조선 말기 경민장이었던 고서흥이 절벽을 타고 다녀야 했던 건입포 주민들을 위해 사재를 내놓아 바위 언덕 위 암반을 부수어 도로를 개척한 곳이다. 공덕동산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바위 언덕길을 뚫은 고서흥을 기리는 공덕비와 그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건입동 옛 여관 골목길을 지나면 금산수원지 생태공원에 바로 도착한다. 금산수원지는 1957년 지하에서 솟아나자마자 바다로 흘러드는 물을 이용해 급수를 개시한 제주 최초의 수원지로 2008년 폐쇄될 때까지 제주시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해 왔다. 현재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인공폭포와 물사랑 홍보관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식수원이었던 금산물, 지장각물(지장샘)을 볼 수 있다.
공원 안을 천천히 거닌다. 지금쯤이면 겨울꽃 수선화가 꽃대에 순백의 꽃을 피워냈을 거라 기대하고 왔는데 고개 숙인 수선화가 멀리서도 한눈에 띈다. 맑은 하늘 아래 흐르는 도심 속 용천수, 수줍은 수선화를 여유롭게 살피는데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호사스럽다.
  • 경사가 급한 바위길 공덕동산 ↑경사가 급한 바위길 공덕동산
  • 주민들의 식수원이었던 금산물 ↑주민들의 식수원이었던 금산물
  • 금산수원지 물사랑홍보관 ↑금산수원지 물사랑홍보관
  • 금산수원지생태공원에 핀 수선화 ↑금산수원지생태공원에 핀 수선화

아름다운 어화의 향연 산포조어

산포조어표지석
↑산포조어표지석
물사랑 홍보관에 들려 제주 물의 역사를 살펴본다. 제주의 물 문화와 생활용수까지 되새기며 읽어보니 흥미롭다. 여전히 햇살은 따사롭다. 전망대의 계단을 걸어 올라 금산에 오른다. 원래 이곳은 병풍처럼 암벽으로 벼랑을 이룬 곳으로 나무가 많고 풍치가 뛰어났다. 국가용재로 이용되는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도록 '금산'이라고 이름 지었다.
전망대에 올라 도심 시가지와 탑동 바다를 바라본다. 그리고 상상 속에 빠진다. 영주(瀛州) 10경 산포조어(山浦釣漁). 지금은 제주항이 계속 확장되어 크게 달라졌지만 이 금산 앞은 산포조어로 유명한 산지포구였다. 산기슭에 광대천과 지장각 연못이 있어 바로 바다로 이어졌고 여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물을 즐기던 곳이다. 밤에는 여러 어항에서 출어한 고깃배들이 제주 바다를 덮어 어화가 눈부셨다.

전망대를 내려오면서 현란한 상상의 그림 속에서 빠져나온다. 제주항 동쪽 동산 만수사 옛터로 발걸음을 총총히 옮긴다. 만수사 터는 고려시대 동자복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다. 사찰은 조선시대 불교 타파 정책으로 파괴되어 흔적이 없지만 빈 절터에는 제주의 큰 어른인 복신미륵 동자복이 두 손을 가슴에 얹고 푸근하게 서 있다. 용화사의 서자복과 함께 제주성의 수호신적 역할을 했던 동자복은 인간의 수명과 행복을 관장했다. 소탈한 모습의 동자복을 보면 신이 아니라 옆집 삼촌을 보는 기분이다. 언제든지 부담 없이 다가가 말을 건넬 수 있고 소원을 빌어 볼 수 있어 동자복을 보면 가까운 사람을 만나는 듯 왠지 반갑다. 얼굴 가득 미소가 빙삭해서 편안한 것일까?

지는 해의 아름다움 사봉낙조

칠머리길과 동대길을 지나서 걷다 보면 사라봉 공원 입구다. 건입동의 지형은 사라봉 고갯길인 ‘고으니모르’를 중심으로 화북과 경계를 이루며 동쪽에 위치한 사라봉과 북쪽을 향한 바다 그리고 제주시의 3대 하천 중 하나인 산지천으로 특징 지워진다. 사라봉은 높이 148.2m, 둘레 1,934m의 나지막한 오름인데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는 망망대해를 따라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한라산이 가깝고도 멀리 바라다보인다. 발 아래로는 제주시의 동쪽과 서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저녁때가 되면 하루를 다 태운 붉은 해가 고요한 바다를 물들이며 지는 광경이 아름답다. 예로부터 사라봉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사봉낙조(紗峯落照)라 하여 산포조어(山浦釣漁)와 더불어영주(瀛州) 10경의 하나로 이름났다.
사라봉 공원에는 조선시대 봉수대, 일제 강점기 진지동굴, 건입동의 본향당 칠머리당 외에도 남쪽 모충사에 의병항쟁기념탑, 의녀반수 김만덕 의인탑, 김만덕 묘비,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 동쪽으로 칠머리당 영등굿 전수관, 북쪽으로 사라사와 산지등대가 있다. 건입동 포제단을 둘러보고 바로 산책로를 오른다. 망양정이 있는 정상까지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한껏 여유롭다. 진지동굴을 지나 꽃과 잎을 다 벗어낸 벚나무를 따라 정상을 오르니 공기가 탁 트인다. 갸웃갸웃 붉은 동백꽃이 설렘을 뿜어내고 또르르 또르르 멀구슬나무 열매가 하늘을 향해 구르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대양을 품은 채 생각에 잠긴다.
  • 사라봉공원의 김만덕 묘비 ↑사라봉공원의 김만덕 묘비
  • 사라봉의 망양정 ↑사라봉의 망양정
  • 사라봉 북쪽의 수평선 풍경 ↑사라봉 북쪽의 수평선 풍경
  • 발 아래 펼쳐지는 사봉낙조 ↑발 아래 펼쳐지는 사봉낙조

세계무형문화유산 칠머리당영등굿

  • 칠머리당터에 세워진 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 사라봉 언덕을 지키는 산지등대 ↑사라봉 언덕을 지키는 산지등대
  • 옛 칠머리당터 ↑옛 칠머리당터
  • 사라봉과 별도봉 사이 칠머리당 자리 ↑사라봉과 별도봉 사이 칠머리당 자리
사라봉의 동쪽을 내려오면 별도봉산책로와 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이 있다. 그리고 제주항 방면을 향하면 산지등대가 있다. 잠시 망설이다 산지등대로 발길을 돌린다. 산지등대는 1916년 10월 무인등대로 처음 점등을 시작하고 83년간 바다를 향해 빛을 밝혔다. 현재는 1999년 12월에 세워진 새 등탑이 사라봉 언덕을 지키고 있다. 산지등대에서 별도봉을 바라본다. 저 멀리 서우봉까지 눈길을 뻗어본다. 등대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고개를 돌려 제주 시내 중심에 있는 해안, 탑동을 물끄러미 본다. 바다는 고요하고 제주항은 거대하게 다가온다. 혼자 풍경에 젖어 있으니 온갖 사사로운 생각이 스친다. 젖은 생각을 털어내고 옛 칠머리당을 향한다. 아쉬움에 고개를 돌려보는데 길을 떠나온 자가 등대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 누군가가 오늘 이 등대를 이 바다를 이 제주를 비로소 기억하게 되겠구나.

칠머리길을 걷다 보면 팽나무 쉼터가 있다. 그 가까이에 옛 칠머리당 터 표지석이 있다. 벽에는 바람을 불어 넣는 영등할망과 영등굿을 하는 안사인 심방의 모습, 그리고 배방선을 띄워 안전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칠머리당은 본래 건입포 칠머리에 있었다. 옛 주정공장 부지 조성과 항만 확장 공사로 절벽이 깎이어 장소를 전전하다 현재는 사라봉과 별도봉 사이에 볼록하게 자리한 알오름으로 옮겨졌다.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남쪽에서 제주로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이하는 봄맞이 굿이고 어민의 풍요로운 바다를 기원하는 소망굿으로 음력 2월 1일에 영등환영제와 2월 14일에 영등송별제를 치른다. 영등신에 대한 제주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 있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1980년 11월 26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는 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에서 굿을 이어오고 있다.

세상을 비추는 은혜로운 빛 김만덕

영등굿이 그려진 벽화를 다시 본다. 바다라는 공간, 그곳에는 늘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했고 굿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위로했다는 생각이 스친다.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을 향한 계단을 내려와 옛 주정공장 터에 도착한다. 안내 표석을 찬찬히 읽는다. ‘이곳은 제주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 당시 수많은 제주 민중들이 끌려와 감금당한 채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모진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옛 주정공장 터다’라고 새겨있다.
여객터미널 앞을 지나는데 앙상한 뼈를 드러낸 채 곡괭이를 들고 있는 ‘강제동원 노동자상’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제주인들이 제주항을 통해 육지, 일본, 중국, 사할린, 동남아시아, 태평양의 이름 모를 곳으로 광산, 군수공장, 전장 터, 위안부 등으로 끌려갔다. 고향 땅을 떠나면서 그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선한 그들의 눈동자가 가슴을 울린다. 무거워진 마음을 털어 내려고 김만덕 기념관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김만덕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건입동에는 기념관 외에도 김만덕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옛 객주 터, 재현된 김만덕 객주, 묘비, 의녀반수 김만덕 의인탑 등이 있다. 김만덕은 정조시대 여성 CEO로 제주민들이 전대미문의 기근으로 아사 위기에 처했을 때 사재 전부를 털어 제주민을 구해낸 의인이다. 은광연세(恩光衍世), 세상을 비추는 은혜로운 빛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삶을 실천하여 조선시대 여성으로서 최고의 벼슬인 ‘의녀반수’에 올랐다.
강제동원노동자상
↑강제동원노동자상
만덕기념관
↑만덕기념관

역사와 비경이 공존하는 건입동

김만덕 기념관에 들려 조선시대 여성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거상으로서, 의인으로서 그녀가 살아왔던 일생을 살펴보고 영정 앞에 선다. 남녀의 구별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여성으로서 거상이 되기도 힘들었겠지만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내가 직접 이룬 일도 아닌데 갑자기 뿌듯함이 밀려온다. 다리도 잠시 쉴 겸 창에 기대어 선다. 눈 아래로 산지천이 흐른다. 여기서 내려다보니 천과 바다가 함께 보인다. 산지천은 한라산 중턱에서 발원해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거쳐 하구인 건입동 제주항 바다로 이어지는 하천이다. '탐라지' 등 여러 고문헌에 산저천(山低川)이란 이름으로도 나오는데 ‘금산 아래를 흐르는 내천’이라는 의미이다. 용진교에 서서 산지천과 길 따라 들어선 건물들을 바라본다. 그 너머로 금산과 금산물 그리고 산지천과 포구 등 비경들이 하염없이 그려진다. 아름다웠겠다. 온 재산을 털어 도민들을 구한 김만덕의 숭고한 자취며 제주항에서 눈물로 이별하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들을 떠올린다. 역사와 비경이 공존하는 건입동이다.
제주항모습(산지등대에서)
↑제주항모습(산지등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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