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눈이 없는 겨울, 따듯한 햇살의 기운이 온몸 가득 스며든다. 꼭 봄날 같기만 한 겨울이다. 무리 없이 걷기에 좋은 날, 공덕동산을 천천히 내려오며 도심 속 금산수원지 생태공원을 찾아간다. 공덕동산은 경사가 급한 바위 위에 놓인 도로이다. 이곳은 조선 말기 경민장이었던 고서흥이 절벽을 타고 다녀야 했던 건입포 주민들을 위해 사재를 내놓아 바위 언덕 위 암반을 부수어 도로를 개척한 곳이다. 공덕동산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바위 언덕길을 뚫은 고서흥을 기리는 공덕비와 그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건입동 옛 여관 골목길을 지나면 금산수원지 생태공원에 바로 도착한다. 금산수원지는 1957년 지하에서 솟아나자마자 바다로 흘러드는 물을 이용해 급수를 개시한 제주 최초의 수원지로 2008년 폐쇄될 때까지 제주시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해 왔다. 현재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인공폭포와 물사랑 홍보관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식수원이었던 금산물, 지장각물(지장샘)을 볼 수 있다.
공원 안을 천천히 거닌다. 지금쯤이면 겨울꽃 수선화가 꽃대에 순백의 꽃을 피워냈을 거라 기대하고 왔는데 고개 숙인 수선화가 멀리서도 한눈에 띈다. 맑은 하늘 아래 흐르는 도심 속 용천수, 수줍은 수선화를 여유롭게 살피는데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호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