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창 너머 산의 표정을 확인한다. 따듯한 기운이 보인다. 잠시 머뭇거려지는 마음을 밀어내고 길을 나선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고 중산간동로에 진입한다. 이제부터 여유롭다. 오고 가는 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느려질 수 있어 홀가분하다.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중산간 마을을 천천히 살펴본다. 아쉬움이 물결친다. 조천읍 와흘리 마을에 접어들고 대흘리 마을을 지나 와산리 마을 그리고 선흘1리 마을에 도착한다.
선흘1리 복지회관과 동백상회 그리고 범죄 없는 마을 표지석, 주인을 기다리는 오토바이가 차례대로 눈에 들어온다. 오토바이의 주인은 누굴까? 이른 아침에 어디로 마실을 나간 것일까? 인적 없는 길에 핀 유채꽃이 살짝 외로워진 마음을 달래준다. 버스 한 대에서 동네 삼촌들이 내린다. 말을 걸 새도 없이 삼촌들도 오토바이도 제 갈 길을 간다.
습관처럼 안내판을 읽고 마을을 걷기 시작한다. 발길은 저절로 불칸낭을 향한다. 불칸낭은 불에 칸(탄) 낭(나무)이라는 의미로 제주4·3 당시에 불에 탔다고 알려졌다. 불칸낭 후박나무 속에는 아직도 불에 탔던 검은 자국이 선명하다. 둥치가 이렇게 많이 타버렸는데 살아있는 모습을 보면 신비롭다. 불에 탄 나무의 반대편에는 송악이 달려 있고 그루터기에는 동백나무, 후박나무, 사철나무 등이 불칸낭과 함께 살아간다. 어디선가 날아온 다른 나무의 씨가 새싹을 틔워 몇십 년을 같이 살아온 것이다. 아마도 서로 도왔기에 생명이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들도 그네들처럼 함께 어려움을 살아내야 할 텐데. 불칸낭에 초록 잎이 무성하다. 그루터기 속 나무들도 건강하다. 볼 때마다 느끼는 나무의 강인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