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닥한 제주 마을

습지를 품은 마을,
조천읍 선흘1리
혼자 편안하게 걷고 싶을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곳. 그래서 무작정 찾게 되는 마을, 길이 편하고 습지와 숲이 아름다운 조천읍 선흘1리 마을이다. 선흘1리는 조천읍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 ‘선’은 ‘서(立)’에 ‘-ㄴ’이 붙은 것이고, ‘흘’은 제주 방언으로 돌무더기와 잡풀이 우거진 곳으로 선흘곶을 뜻한다. 현재 본동, 낙선동, 신선동, 목선동 등 4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주민들 대다수가 감귤농사와 목축업에 종사한다.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제주 공감곱닥한 제주 마을 (아름다운 제주 마을)
습지를 품은 마을, 조천읍 선흘1리
혼자 편안하게 걷고 싶을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곳. 그래서 무작정 찾게 되는 마을, 길이 편하고 습지와 숲이 아름다운 조천읍 선흘1리 마을이다. 선흘1리는 조천읍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 ‘선’은 ‘서(立)’에 ‘-ㄴ’이 붙은 것이고, ‘흘’은 제주 방언으로 돌무더기와 잡풀이 우거진 곳으로 선흘곶을 뜻한다. 현재 본동, 낙선동, 신선동, 목선동 등 4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주민들 대다수가 감귤농사와 목축업에 종사한다.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불타버린 후박나무불칸낭

  • 불칸낭 사이로 보이는 마을 전경 ↑불칸낭 사이로 보이는 마을 전경
  • 마을 초입 풍경 ↑마을 초입 풍경
  • 불칸낭의 불에 탄 검은 자취 ↑불칸낭의 불에 탄 검은 자취
이른 아침 창 너머 산의 표정을 확인한다. 따듯한 기운이 보인다. 잠시 머뭇거려지는 마음을 밀어내고 길을 나선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고 중산간동로에 진입한다. 이제부터 여유롭다. 오고 가는 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느려질 수 있어 홀가분하다.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중산간 마을을 천천히 살펴본다. 아쉬움이 물결친다. 조천읍 와흘리 마을에 접어들고 대흘리 마을을 지나 와산리 마을 그리고 선흘1리 마을에 도착한다.
선흘1리 복지회관과 동백상회 그리고 범죄 없는 마을 표지석, 주인을 기다리는 오토바이가 차례대로 눈에 들어온다. 오토바이의 주인은 누굴까? 이른 아침에 어디로 마실을 나간 것일까? 인적 없는 길에 핀 유채꽃이 살짝 외로워진 마음을 달래준다. 버스 한 대에서 동네 삼촌들이 내린다. 말을 걸 새도 없이 삼촌들도 오토바이도 제 갈 길을 간다.

습관처럼 안내판을 읽고 마을을 걷기 시작한다. 발길은 저절로 불칸낭을 향한다. 불칸낭은 불에 칸(탄) 낭(나무)이라는 의미로 제주4·3 당시에 불에 탔다고 알려졌다. 불칸낭 후박나무 속에는 아직도 불에 탔던 검은 자국이 선명하다. 둥치가 이렇게 많이 타버렸는데 살아있는 모습을 보면 신비롭다. 불에 탄 나무의 반대편에는 송악이 달려 있고 그루터기에는 동백나무, 후박나무, 사철나무 등이 불칸낭과 함께 살아간다. 어디선가 날아온 다른 나무의 씨가 새싹을 틔워 몇십 년을 같이 살아온 것이다. 아마도 서로 도왔기에 생명이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들도 그네들처럼 함께 어려움을 살아내야 할 텐데. 불칸낭에 초록 잎이 무성하다. 그루터기 속 나무들도 건강하다. 볼 때마다 느끼는 나무의 강인함이다.

상록활엽수 천연림동백동산

불칸낭 아래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길게 나 있는 마을 안 돌담길을 본다.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을 따라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까지 걷는다. 오래전 선흘분교 운동장에 있는 작은 그네가 왜 그렇게 예쁘게 보였는지 모른다. 세상에 허겁지겁 쫓기는 어른이 되어 이제는 돌아가 볼 수 없는 작은 아이였을 때, 그때의 마음이 마냥 그리웠기 때문일 거다. 학교의 느낌도 작은 그네도 그대로인데 운동장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선흘분교를 조금 지나면 동백동산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동백동산 습지센터가 생기기 전부터 이곳을 통해 동백동산 숲을 자주 걸었다. 동백동산은 상록활엽수 천연림으로 20여 년 생 동백나무 10여만 그루를 비롯해 백서향 등 희귀식물들과 팔색조, 제주고사리삼 같은 멸종위기 동·식물 등 여러 생명체가 함께 숲을 이루고 있다. 선흘곶에 위치한 동백동산은 생태적 우수성이 인정되어 1981년 제주도 기념물 제10호, 2014년 세계지질공원 대표 명소로 지정되었다. 자태 고운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입구에 서 있다. 보고 또 본다. 곱다. 숲속에서 동백꽃은 귀하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게 솟은 나무들이 빛을 가려 꽃을 피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 선흘분교 운동장의 작은 그네 ↑선흘분교 운동장의 작은 그네
  • 동백동산 서쪽 입구의 동백나무 ↑동백동산 서쪽 입구의 동백나무
  • 선흘곶에 위치한 동백동산 ↑선흘곶에 위치한 동백동산

생명의 보고람사르습지 먼물깍

먼물깍
↑먼물깍
상록수 숲의 기운 속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새소리 벌레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시골의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다. ‘나무들을 키워내느라 고생했어 숲아’ 말을 건넨다. 이롭게 해주는 것은 없는데 쌓인 답답함을 풀고 싶을 때는 늘 숲에 안긴다. 고맙다. 짙은 낙엽이 숲길에 소복하게 쌓여 있다. 몸을 최대한 낮춰 본다. 바스락거림이 너무 좋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지나간다. 바싹 땅바닥에 엎드려 본다.
숲길 사이로 숨어있던 습지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습지는 오래전 주민들의 생활용수였고 소와 말의 우물 터였다. 곶자왈은 습지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지형이다. 하지만 파호이호이 용암지대에 위치한 선흘곶 동백동산에는 특이하게 습지가 많다. 빌레에 빗물이 고여 형성된 먼물깍이 보인다. 마을에서 가장 ‘멀리 있는 물’ 먼물깍 습지는 다양한 수생식물과 곤충과 양서류가 살고 있는 생명의 보고로 2011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다.깊고 맑은 먼물깍, 수질정화 기능이 정말 뛰어나다. 지구의 모든 생명에게 습지는 중요하다. 다양한 유전자원이 지켜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더 이상 지구가 다치지 않기를 사람들이 병들지 않기를 바라며 흔들리고 있는 물의 결을 가만히 응시한다.

낙선동 4·3성그리고 4·3폭낭

  • 전정작업 중인 감귤밭 ↑전정작업 중인 감귤밭
  • 낙선동 유채꽃 ↑낙선동 유채꽃
  • 함바집과 유채꽃 ↑함바집과 유채꽃
마을 본동을 나와 낙선동으로 향한다. 무꽃이 나부낀다. 귤꽃이 피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 감귤밭에는 전정이 한창이다. 식구가 전부 나와 일을 하고 있다. 노란 소독통 곁에서 펄럭이는 유채꽃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다. 들판에는 여물지 못한 보리가 하늘거린다. 봄의 정취를 잠시라도 내버려 두기 싫었는지 시샘하듯 하늘은 구름을 곧 몰고 올 기세다. 겨울이 지나 4월인데 왜 보리는 여물지 못했을까? 머릿속에 생각 하나 물고 낙선동까지 길을 걷는다.

제주4·3 당시 중산간 마을은 거의 전소 되었다. 선흘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도전역에 전략촌이 만들어졌다. 바로 4·3성이다. 1949년 불타버린 마을에 돌아온 선흘리 주민들은 산과 밭, 곶자왈에서 돌을 지고 와 허허벌판인 낙선동에 자신들을 집단수용할 성을 직접 쌓았다. 오랜 기간 성안의 좁고 비 새는 함바집에서 주민들은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비참한 수용생활을 견디었다. 낙선동 마을의 설촌과 함께한 고난의 증표였던 4·3폭낭이 보인다. 아직은 헐벗은 모습, 곧 녹음이 우거진 폭낭을 볼 수 있을 거다. 성안과 밖은 유채꽃이 만개했다.

알밤오름전경

선흘곶으로 가는마을 선흘1리

성을 따라 걸어 본다. 함바집을 둘러보고 보초를 섰던 초소에 올라보고 남아있는 총구멍을 한참을 바라본다. 고개를 드니 알밤오름이다. 성담 너머 아련하게 고개를 내민 오름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을 어디에 서 있든 알밤오름이 함께 걷는 듯했는데 바매기오름이 성 안에서도 보였구나.
원시림 동백동산을 중심으로 초지, 천연동굴, 내륙습지 등 생태계의 원형이 잘 보존되고 질곡의 역사가 묻어 있는 선흘곶, 화산섬이라는 척박한 세상을 불평하기보다는 함께 살아내는 생명체의 숲, 때로는 생계 수단으로 때로는 생존 수단으로 마을 주민들과 역사를 함께 한 그 선흘곶으로 가는 길에 세계 첫 람사르 마을 선흘1리가 있다.
알밤오름전경
↑알밤오름전경
삼다 제주와 함께하는 즐거운 이야기, 삼다소담

QUICK MENU(12)

삼다소담 웹진 구독신청

삼다소담 웹진 구독신청 하시는 독자분들에게 매월 흥미롭고 알찬 정보가 담긴 뉴스레터를 발송하여 드립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메일 주소 외의 정보는 받지 않습니다.
구독신청을 취소하시려면 아래 [구독취소신청] 버튼을 클릭하신 후 취소신청 이메일을 작성해주세요. 구독취소신청

삼다소담 웹진 구독취소

삼다소담 웹진 구독을 취소하기 원하시면 아래 입력창에 구독신청하신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 후
[구독취소] 버튼을 눌러주세요.
구독을 취소신청하신 경우에는 다음 익월 발행호부터 해당 이메일로 뉴스레터가 발행되지 않는 점을 참고해주세요. 구독신청으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