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닥한 제주 마을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치유의 마을,
남원읍 한남리
남원읍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한남리는 한라산 남동쪽에 위치한 제주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광활한 초원과 산림 등 마을 면적의 87%가 임야로 이루어져 있다. 국제 인증을 받은 한남시험림(사려니), 친환경 녹색길인 머체왓숲길·소롱콧길, 생태하천인 서중천, 거린오름·넙거리오름·머체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과 훼손되지 않은 원시림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치유의 마을이다.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제주 공감곱닥한 제주 마을 (아름다운 제주 마을)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치유의 마을, 남원읍 한남리
남원읍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한남리는 한라산 남동쪽에 위치한 제주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광활한 초원과 산림 등 마을 면적의 87%가 임야로 이루어져 있다. 국제 인증을 받은 한남시험림(사려니), 친환경 녹색길인 머체왓숲길·소롱콧길, 생태하천인 서중천, 거린오름·넙거리오름·머체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과 훼손되지 않은 원시림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치유의 마을이다.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숨겨진 곶자왈머체왓숲길

  • 머체왓숲길의 돌과 나무 ↑머체왓숲길의 돌과 나무
  • 잃어버린 마을 머체골 ↑잃어버린 마을 머체골
  • 머체왓숲길의 초원지대 ↑머체왓숲길의 초원지대
겨울은 이미 끝나 봄을 맞이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어 몸과 마음은 여전히 겨울 그대로다. 자유롭게 걷지 못해서일까? 각박해짐을 스스로가 느끼고 있다. 청정한 공기를 만끽하고 싶다. 바깥 풍경도 그립다. 한적한 숲길을 걸으며 무기력에 빠져 있는 일상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싶다.
쉽게 얻어졌던 모든 것들이 소중해진다. 왜 그걸 이제야 깨닫는 걸까? 오랫동안 미지의 숲이었던 머체왓숲길에 도착했다. 머체왓은 일대가 머체(돌)로 이루어진 밭(왓)이라는 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머체왓숲길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숲이다. 원시림과 목장 초원을 걸어볼 수 있고 편백나무, 삼나무, 동백나무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자연스러움이 매력인 머체왓숲길을 걷고 있으면 온몸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원래가 많이 알려진 요란스러운 숲은 아니긴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보이지 않고 숲은 한산했다. 숲속은 그대로일까. 초록이 짙었던 날의 숲을 기억해 본다. 지금은 한창 동백이 지고 있을 텐데. 입구에 쓰여 있는 오승철 시인의 ‘터무니 있다’ 시 앞에 선다. ‘홀연히 / 일생일획 / 긋고 간 별똥별처럼 / 한라산 머체골에 / 그런 올레 있었네 / 예순 해 비바람에도 삭지 않은 터무니 있네’를 또박또박 읽는다. 머체왓에는 제주4·3 때 사라진 마을의 집터와 올레가 그대로 남아 있다. 역사가 만든 상흔이다. 숲길에 들어가기 전 제주의 아픔, 그 의미를 되새긴다.
숲길로 들어선다. 숨을 크게 들이켜며 천천히 걸어보자. 숲이 쏟아내는 맑은 공기로 코로나19 때문에 잔뜩 긴장한 몸과 마음을 씻어내야겠다. 저류지를 지나는데 비탈에 선 동백나무가 눈길을 끈다. 저류지만 아니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본격적으로 숲을 걷는다. 나무를 보는 순간 복잡한 생각을 뒤로 하고 숲에 오고생이 빠져든다. 느쟁이왓다리에 떨어진 잎들을 조심히 밟아본다. 숲 여기저기 나뭇잎과 함께 동백잎은 어느새 제 생을 마감하고 낙화해 있다.

잃어버린 마을머체골과 빌레가름

  • 머체골을 지나 나타나는 목장 ↑머체골을 지나 나타나는 목장
  • 잃어버린 마을 빌레가름 표지석 ↑잃어버린 마을 빌레가름 표지석
낙엽을 밟는다. 흙을 밟는다. 깊은 숲의 향기가 솔솔 풍겨온다. 목장 지대로서 땅심이 깊은 곳을 찾아 돌담을 둘러쌓고 화전농을 일궜던 방애혹을 지나 제밤낭기원 쉼터에 도착한다. 신비스러운 모습의 제밤나무가 쉬어가라고 가던 길을 붙잡는다. 급하지 않은 길, 잠시 멈추어 선다. 나무 앞에는 누군가가 빌었던 소원들이 하나둘 소담하게 쌓여있다. 편안한 일상을 소원하며 그 위에 돌을 하나 얹는다. 들어주려나. 돌아서니 나무의 뿌리가 다 드러난 길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나무의 뿌리를 밟아 가며 걷는다. 돌 위에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도 보인다.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광경이다. 아름답다. 오래 머물고 싶은데 하늘이 비를 머금는다. 아침에 좋았던 날씨가 걸을수록 궂어진다. 머체왓숲길 전망대 위에 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날이 좋았으면 아마 저 멀리 바다 풍경이 보였을 텐데. 조금은 아쉽다.
초원을 지나 머체골 옛 집터를 향해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인다. 머체왓숲길을 걸으면서 옛 집터를 살펴보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집터에 도착하니 비가 잠시 멈춘다. 다행이다. 예전 머체골에는 목축업을 하던 문 씨, 김 씨, 현 씨 등이 동네를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4·3 당시 소개되면서 복원되지 않았다. 사람은 가고 없는 그곳에 집터였음을 말해주는 돌담만이 질곡의 세월을 견뎌내고 있다. 깊은 숲속이어서 이렇게나 돌담이 지켜진 걸까. 빈 집터 안에 나무들이 빼곡하다. 쓸쓸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남리에는 또 다른 잃어버린 마을이 있다. 본동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빌레가름이다. 빌레가름 마을도 모두 불태워졌다. 지금은 마을 터에 표지석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편백낭 치유의 숲 소롱콧길

  • 소롱콧길 초입 방사탑 쉼터 ↑소롱콧길 초입 방사탑 쉼터
  • 테우리의 집터 흔적 ↑테우리의 집터 흔적
  • 소롱콧길의 첫 번째 편백낭 쉼터 ↑소롱콧길의 첫 번째 편백낭 쉼터
소롱콧길 초입에 있는 방사탑 쉼터가 보인다. 맑은 하늘이 눈앞에 펼쳐져서 일까? 진한 피톤치드 향이 벌써부터 가슴까지 채워진다. 소롱콧길은 서중천과 소하천 가운데 형성된 지역으로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이 우거진 숲이다. 그 지형지세가 마치 작은 용을 닮았다 하여 소롱콧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소롱콧길은 머체왓숲길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다. 두 곳 다 숨은 매력이 넘쳐나지만 빽빽한 편백낭(편백나무) 아래에서 잠시 앉아 ‘나’를 치유하고 싶다면 소롱콧길을 먼저 걸어도 좋다. 시작부터 동백나무가 발길을 잡는다. 다 쓰러져 가는 나무를 안아내고 있는 또 다른 나무의 모습 때문에 그냥 울컥했다. 숲은 참 위대하다. 품어 주는 것이 많다. 지금 같은 때 쓰러져 가는 누군가를 아낌없이 감싸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옛 올레길이 이어진다. 아마도 말테우리들이 지나다니고 목축이나 약초를 캐기 위해 다녔던 길일 것이다. 드넓은 목장에는 짙은 갈색의 말이 홀로 풀을 뜯고 있다. 테우리의 집터로 보이는 돌담도 보인다. 날이 좋아서인지 숲을 찾아온 사람도 있다. 멀리 걷고 있는 모습을 보기만 했는데도 내심 반가웠다. 한라산 둘레길을 걷고 있든지 아니면 머체왓숲길을 걷고 있는 중일 거다. 아니면 서중천으로 향하는지도 모른다. 갈림길 앞에서 숲은 여러 길로 이어졌다. 누구든 어디로 갈 것인지 자신의 걸음을 선택해야 한다.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첫 번째 편백낭 쉼터에 도착했다. 비어 있는 평상에 자꾸 눈길이 간다. 평상에 사람이 앉아 있었으면 다가갈 수는 있었을까. 사람을 자꾸 멀리 두게 만드는 예상치 못한 최근의 상황들이 조금은 답답하다. 일상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국영목장의 경계선9소장 잣성

소롱콧길에 남아 있는 중잣성길
↑ 소롱콧길에 남아 있는 중잣성길
건강한 산림욕을 혼자만 즐겨야 하다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숲을 좀 더 걸어가야겠다. 그러면 사람들이 보일지도 모른다. 햇살이 나무 사이사이로 쏟아진다. 따듯하고 편안하다. 중잣성길로 들어선다. 소롱콧길에 가면 기분이 괜히 좋아지는 것은 편백낭과 더불어 질박한 돌담선이 매력적인 잣성길을 따라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잣성은 단순한 돌담이 아니다. 제주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석성이며 조선시대 중산간 지역의 대표적인 토지 이용 형태인 목축 활동을 보여주는 제주 고유의 유물 경관이다. 제주는 고려시대 원 간섭기부터 대규모 목마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제주 목장을 10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10소장 체계가 갖추어졌다. 국영 목장인 10소장 위·아래 경계에 방목하는 말들이 농경지로 내려와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중산간 지역을 빙 둘러 가며 돌담을 쌓았다. 바로 잣성이다.
잣성은 해발 높이를 기준으로 하잣성, 중잣성, 상잣성으로 구분되고 중산간 지역을 3등분 하는 역할을 했다. 한남리 마을에는 세 종류의 잣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서귀포시 지역에 위치했던 9소장의 존재를 입증해 주고 있다. 나무를 사이에 두고 곧기도 하고 휘어지기도 하면서 멀리 뻗은 중잣성길을 따라간다.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것일까? 끝인가 하면 다시 잣성이 보인다. 정말 길게도 뻗어 있다. 이렇게 넓은 지역에 돌담을 쌓고 말을 키웠다니 선인들의 고초가 이루 말할 수 없었겠다.

생태계의 보고 비경을 간직한서중천

두 번째 편백낭 쉼터가 가까워진다. 쉼터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방사탑을 둘러싸고 있는 편백낭이 하늘로 솟구쳐 있다. 빼곡한 편백낭 속에 몸과 마음을 푹 담그니 어느새 피로감이 사라진다. 아무도 없는 평상을 바라보다 다시 걷기 시작한다. 소롱콧길의 반, 이제 서중천을 따라가면 된다. 한남리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서중천은 제주에서 세 번째로 긴 하천이다. 한라산 흙붉은오름 분화구에서 용출하는 샘에서 발원하여 한남리를 지나 남원읍 남원리와 태흥리 바닷가로 흘러간다. 서중천은 생태적, 경관적 가치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생활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터전이기도 하다.
계곡을 살핀다. 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들어진 천연의 계곡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지난번 내린 비 때문인지 물이 고인 곳에 나무의 반영이 신비롭다. 용암석의 위용도 대단하다. 척박한 바위에서 자생하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도 탄성을 부른다. 원앙새가 찾아온다는 올리튼물이 바로 앞이다. 올리튼물은 서중천 가장자리에 위치한 큰 소로 가뭄에도 물이 풍부하다. 원앙새, 오리 등이 둥지를 틀어 물 위에 한가롭게 떠 있다 해서 올리튼물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서 원앙새를 보면 복이 찾아온다는 설이 있어 가깝게 다가갔다. 고여 있는 물 아래로 반영만 무성했다. 길을 재촉한다. 마음은 이미 서중천을 장식하는 기묘한 용암석과 나무에게 다 빼앗겼다. 발걸음이 자꾸 늦어진다.
  • 소롱콧길 두 번째 편백낭쉼터 ↑소롱콧길 두 번째 편백낭쉼터
  • 서중천 모습 ↑서중천 모습
  • 서중천에 비친 반영 ↑서중천에 비친 반영
  • 서중천 올리튼물 ↑서중천 올리튼물

한라산 너머 건강보따리한남리 마을

길은 휘휘 돌고 늘 다시 시작점이다. 마을 안 돌담을 따라 걷는다. 감귤 창고와 쌓여 있는 나무 상자들이 햇볕을 듬뿍 쬐고 있고 동백은 마을 곳곳에 피고 지고 있다. 집 뒷마당에는 배추꽃과 무꽃이 한데 어울려 바람을 타고 초록이 무성한 과수원 너머에는 한라산이 좌정해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푸근하다. 봄이 오긴 왔나 보다. 마을은 어느 것 하나에도 무심해질 수 없고 스쳐 지나갈 수가 없다. 딱히 정해진 순서를 따라 걸을 필요도 없다. 한남리 자연 속에서 마을 안에서 치유의 기운을 느낀다. 사람들과 함께 걷기 좋은 계절이 오면 다시 오고 싶은 곳, 한라산 너머 건강보따리 한남리 마을이다.
푸근한 느낌을 주는 마을 안 동백나무와 감귤창고 풍경
↑푸근한 느낌을 주는 마을 안 동백나무와 감귤창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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