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따듯했던 그 시절이 갑자기 그립다. ‘삼촌 양배추 따는 거 마심’, ‘응 이거 양배추 따는 거’, ‘이건 뭐 마심’, ‘이거 브로콜리’, ‘이건 또 뭐우꽝’, ‘적채 게 자색 양배추’ 원래 촌년으로 태어났는데 언제부터 도시 사람이 다 되었다고. 자주색과 초록색이 지천으로 펼쳐진 영등할망 밭담길에서 삼촌들에게 묻고 또 묻는다.
밭담길 풍경에 홀딱 반하고 일 나온 마을 삼촌들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니 어느새 옛 은신의숙 터인 귀덕향사 앞이다. 은신의숙은 귀덕1리에 설립되었던 개량서당이었다. 일반 서민 자제들이 보통교육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개량서당은 아이들에게 한국어, 한문, 일본어, 산술 등을 가르치는 초등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다. 귀덕향사 근방에는 일제강점기 37세 나이로 옥중 순국한 의사 조봉호 선생의 옛 생가터가 있다. 표지석 앞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전 재산을 상해 임시정부 자금으로 헌납하고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홀로 순국한 선생의 애국 애족 정신에 한없이 부끄럽다. 쓸쓸해진 마음 앞에 정자목이 고개를 내민다. 팽나무다. 제주 사람들에게 팽나무는 신목으로 정자목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중동, 사동, 신서동, 성로동, 하동 귀덕1리 자연 부락 곳곳 마을 길목에, 올렛담 입구, 정류소 옆, 밭담 앞에 잘 자란 팽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키워낸 나무도 아닌데 참 뿌듯하다.
바람 섬 제주의 거센 바람을 맞이하는 나무 팽나무. 스스로 바람이 된다. 언제나 근사하다. 그 어떤 말로 표현해도 그 이상의 찬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보다 더 많은 평생을 선 자리 그대로 온몸으로 비바람을 품어내고 살아낸 팽나무. 팽나무에는 시류를 타지 않는 오래된 세월의 멋스러움이 있다. 팽나무에 반해 귀덕1리 마을 구석구석을 종종 걷는다. 나무가 그립고 그 순명함이 부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