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닥한 제주 마을

영등할망이 처음 오는
한림읍 귀덕1리
제주 시내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한림읍, 바람신 영등할망이 처음 오는 귀덕1리가 있다. 귀덕1리는 마을 앞바다에 ‘큰여’, ‘작은여’라고 부르는 자연용암도서가 2개가 이 마을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여’를 ‘석천도(石淺島)’라고 불렀으며 마을 이름을 ‘돌여’, ‘돌덕’이라 해서 ‘석천촌(石淺村)’이라고 불렀다. 석천촌(石淺村)을 고려 시대에 귀덕현(歸德懸)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제주 공감곱닥한 제주 마을 (아름다운 제주 마을)
영등할망이 처음 오는 한림읍 귀덕1리
제주 시내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한림읍, 바람신 영등할망이 처음 오는 귀덕1리가 있다. 귀덕1리는 마을 앞바다에 ‘큰여’, ‘작은여’라고 부르는 자연용암도서가 2개가 이 마을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여’를 ‘석천도(石淺島)’라고 불렀으며 마을 이름을 ‘돌여’, ‘돌덕’이라 해서 ‘석천촌(石淺村)’이라고 불렀다. 석천촌(石淺村)을 고려 시대에 귀덕현(歸德懸)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세계중요농업유산영등할망 밭담길

  • 양배추를 수확하는 농부 ↑양배추를 수확하는 농부
  • 밭담과 허수아비 ↑밭담과 허수아비
  • 밭담에서 바라본 과오름 풍경 ↑밭담에서 바라본 과오름 풍경
입춘이 지났다. 봄바람이 파도를 타고 넘어와 광활한 들판이 술렁거린다. 1만 8천여 빛깔의 바람을 움직이는 신 영등할망을 기다린다. 바다 저 멀리서 풍작과 풍어를 한 아름 품고 벌써 달려오시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19로 얼룩진 불안한 겨울을 어서 거두고 사람들에게 행복한 봄기운을 골고루 나누어 주시라고 소원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한라산맥이 서쪽으로 줄기를 따라 내려오다가 북쪽으로 쭉 뻗어 있어 마치 반도처럼 광활한 귀덕1리는 푸른 바다와 초록 들판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풍부한 어장과 넓은 농경지로 주민들의 반농반어 생활문화도 뚜렷하다.
브로콜리, 양배추, 쪽파, 콜라비, 자색 양배추 등이 심어진 밭 사이로 바람을 타며 얼기설기 경계를 이루는 흑룡만리 밭담이 구불구불 길게 나 있다. 농경지 사이로 끊임없이 이어진 제주 밭담, 제주 특유의 경관인 밭담은 농민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고려 시대 김구 판관에 의해 탄생되었다고 전한다. 흙보다 돌이 많았던 화산섬 제주. 옛 선인들은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쏟아지는 돌을 골라내 밭담을 쌓고 농토를 경작했다. 제주인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경계선 밭담은 2013년 1월 국가중요농업유산, 2014년 4월 유엔식량농업기구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되어 농업유산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밭담에서 바라본 과오름 풍경
귀덕1리에는 영등할망 밭담길이 있다. 영등할망 밭담길은 구좌읍 월정리와 평대, 성산읍 신풍리와 난산리, 한림읍 동명리, 애월읍 수산리에 이어 일곱 번째로 열린 밭담길이다. 소담한 마을 풍경과 어우러져 높지도 낮지도 않은 밭담길이 끝없다. 밭담 사이로 정신없이 걸음을 옮기니 홀가분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눈길을 돌리면 저 멀리 바다가 아스라이 가깝다. 구름에 감겨 한라산은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밭담 너머로 과오름의 풍채가 멋스럽고 어도봉의 모습도 한결 친근하다. 날이 더 따듯해지기 전에 수확을 서둘러야 한다며 아침 일찍부터 브로콜리를 따고 있다는 삼촌의 얼굴에는 근심보다는 미소가 앞선다.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부부 그리고 아이들과 같이 밭에 나온 가족들을 차례로 지나친다. 식구라는 말이 가슴을 스친다. 부모님 따라 졸린 눈 비벼대며 밭일 다니던 생각도 떠오른다. 그때는 가족끼리 일을 당연히 도왔고 함께 한 끼 밥을 해 먹었다. 식구였다. 그랬다. 지금은 가족은 있지만 식구는 없다고 누군가 이야기한다.

스스로 바람이 되어주는멋스러운 팽나무

  • 포제단과 팽나무 ↑포제단과 팽나무
  • 옛 은신의숙 터 귀덕향사 ↑옛 은신의숙 터 귀덕향사
  • 경운기와 팽나무 ↑경운기와 팽나무
어릴 적 따듯했던 그 시절이 갑자기 그립다. ‘삼촌 양배추 따는 거 마심’, ‘응 이거 양배추 따는 거’, ‘이건 뭐 마심’, ‘이거 브로콜리’, ‘이건 또 뭐우꽝’, ‘적채 게 자색 양배추’ 원래 촌년으로 태어났는데 언제부터 도시 사람이 다 되었다고. 자주색과 초록색이 지천으로 펼쳐진 영등할망 밭담길에서 삼촌들에게 묻고 또 묻는다.
밭담길 풍경에 홀딱 반하고 일 나온 마을 삼촌들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니 어느새 옛 은신의숙 터인 귀덕향사 앞이다. 은신의숙은 귀덕1리에 설립되었던 개량서당이었다. 일반 서민 자제들이 보통교육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개량서당은 아이들에게 한국어, 한문, 일본어, 산술 등을 가르치는 초등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다. 귀덕향사 근방에는 일제강점기 37세 나이로 옥중 순국한 의사 조봉호 선생의 옛 생가터가 있다. 표지석 앞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전 재산을 상해 임시정부 자금으로 헌납하고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홀로 순국한 선생의 애국 애족 정신에 한없이 부끄럽다. 쓸쓸해진 마음 앞에 정자목이 고개를 내민다. 팽나무다. 제주 사람들에게 팽나무는 신목으로 정자목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중동, 사동, 신서동, 성로동, 하동 귀덕1리 자연 부락 곳곳 마을 길목에, 올렛담 입구, 정류소 옆, 밭담 앞에 잘 자란 팽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키워낸 나무도 아닌데 참 뿌듯하다.
바람 섬 제주의 거센 바람을 맞이하는 나무 팽나무. 스스로 바람이 된다. 언제나 근사하다. 그 어떤 말로 표현해도 그 이상의 찬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보다 더 많은 평생을 선 자리 그대로 온몸으로 비바람을 품어내고 살아낸 팽나무. 팽나무에는 시류를 타지 않는 오래된 세월의 멋스러움이 있다. 팽나무에 반해 귀덕1리 마을 구석구석을 종종 걷는다. 나무가 그립고 그 순명함이 부럽기 때문이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귀덕연대

  • 귀덕연대 ↑귀덕연대
  • 귀덕연대에서 바라본 귀덕바다 ↑귀덕연대에서 바라본 귀덕바다
팽나무를 따라 중동, 성로동, 신서동까지 걸어본다. 꽤나 길이 길다. 해안부터 들판까지 경사가 없어 평평하게 뻗은 마을이 정말 넓다. 낮이 다 끝나갈 무렵인데도 일을 나온 식구들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지 밭일을 멈추지 않는다. 밭일을 서로 돕는 부부의 모습은 어디서든 반갑다. 한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괜스레 말을 건넨다. ‘신서동은 어디로 가면 돼 마심’, ‘저쪽으로 쭉 갑서’, ‘마을이 정말 크네요’, ‘귀덕1리가 원래 마을이 큰 디우다’ 손짓으로 저 멀리 신서동 방향을 가리킨다. 여름날 기억 속에 자리 잡은 팽나무의 상태가 궁금했다. 새로운 봄날을 위해 무성한 초록 잎을 다 벗어던진 팽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며 걷는다. 그 앞에 선다. 밭에서 일하는 삼촌이 이 마을 팽나무들이 멋스럽다고 자랑을 한다. 당연한 말이다.
긴 길을 걸었지만 팽나무를 봐서 기분은 좋다. 시멘트가 아닌 흙을 직접 볼 수 있어 눈도 오랜만에 호강이다. 바람을 맞아서 몸도 마음도 훌훌 가볍다. 요즘 세상에 어디에서 흙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도심에서 맨흙을 찾기는 하늘에서 별을 보는 것만큼 어렵다. 흙을 실컷 봤으면 이젠 바다로 향해 보자. 귀덕 바다를 한 번에 조망하고 싶으면 옛 망해대 터가 있는 귀덕연대를 찾아가면 된다. 귀덕연대는 조선시대 외적에 대비하기 위해 복덕개 남쪽 100m쯤 되는 높은 곳에 설치된 방어 유적이다. 동쪽으로 애월연대 서쪽으로는 우지연대와 교신했다. 후에 연대 터에 월대를 구축하여 ‘망해대’라 이름 짓고 시인 묵객들이 교류하던 장소로 쓰였다. 현재는 흔적이 사라지고 지대석만 남아 있다. 귀덕초등학교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옛 비석 앞에는 수선화가 곱게 피어 있고 아빠와 어린 소녀가 나들이를 나와 있다. 작은 언덕 위로 올라간다. 옛 선인들은 귀덕연대(망해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극찬하여 귀덕석천(歸德石淺)이라고 했다. 바다가 보일까? 귀덕 바다가 보인다. 작은여와 큰여가 보인다. 거북등대가 보인다. 그래서 이곳에 연대가 있었던 거구나.

제주의 전통 포구모살개와 복덕개

길은 바다로 향하고 있다. 날이 풀려가고 있어서일까? 맑은 날씨를 기다려서일까? 귀덕 바다가 멀리까지 탁 트여 온다. 바다로 나란히 이어진 길 위 귀덕 궤물동산을 올려 본다. 영등좌수 동상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금세 동산 위에 올라 난간에 기댄다. 온몸을 바다에 기울인다. 바다가 온다. 애월 바다에서부터 돌담을 따라 푸른 내음이 뻗어 온다. 포즈를 취하는 다정한 연인의 모습이 더없이 푸르게 행복해 보인다. 물이 맑고 해안선이 아름다운 해모살을 따라 영등할망 신화공원 안을 천천히 걷는다. 공원 곳곳에는 귀덕본향당(할망당), 용천수, 포구, 등명대 등 다양한 어로 유적이 있다. 봄의 씨앗을 뿌려주는 영등할망과 신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옛 선민들에게 푸른 바다는 어떤 존재였을까. 낭만과 설렘이 가득한 곳이었을까? 제주 사람들에게 바다는 숙명이었다. 거친 농토의 한계성을 이겨내고자 바당밭으로 나아가야 했고 육지와 소통하기 위해 길을 내야 했다. 흙이라는 자연에 밭담을 만들었듯이 바다라는 자연에 포구를 만들었다. 거친 물살과 바람을 맞이하고 품어냈다. 한 낚시꾼이 모살개(귀덕 포구)에 서 있다. 안캐·중캐· 밧캐·3판 구조로 축조된 모살개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포구다. 테우와 돛단배를 이용했던 옛 시절에도 수중 암초인 ‘여’와 더불어 3판 구조가 거센 파도를 막아줬던 모살개는 태풍 피해가 적었다.
귀덕항을 바라보는 노부부. 영등할망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미소가 느껴진다. 귀덕 본향당인 할망당과 용천수 큰이물을 살펴보고 곧 복덕개 포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해녀들이 영등용왕제를 지냈던 돈지빌레와 함께 복덕개 포구의 모습이 나타난다. 복덕개는 작은 포구이다. 그런데도 ‘큰개’라고 불렸다. 이름 그대로 ‘복덕(福德)’이 들어오는 포구이기 때문이다.
  • 복덕개 포구 ↑복덕개 포구
  • 용천수 되물 ↑용천수 되물
  • 용천수 큰이물 ↑용천수 큰이물
  • 귀덕해모살 저녁풍경 ↑귀덕해모살 저녁풍경

신화와 역사가 있는 마을귀덕1리

제주에는 1만 8,000여 신(神)이 있다. 많은 신 중에 풍랑을 다스리는 바람의 신이 영등할망이다. 사람들은 신이 왔다 가야 봄이 온다는 믿음을 가져왔다. 영등할망은 영등달(음력 2월)에 불어오는 서북풍 계절풍을 신격화한 이름이다.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영등할망은 한림읍 귀덕1리 복덕개로 들어온다. 복덕개는 바로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처음 들어오는 영등올레를 상징한다. 영등할망은 한라산과 세경너븐드르(대지) 그리고 바당 밭까지 씨를 다 뿌려주고 음력 2월 보름날 우도로 나간다. 영등달이 오면 제주의 여러 마을에서 영등할망을 환송하기 위한 영등굿을 한다. 복덕개 포구가 자리한 귀덕1리에서도 영등신맞이를 한다. 영등할망 신화공원에서 영등할망을 비롯한 여러 신과 식솔들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제주 신화에 푹 빠져든다. 영등할망의 씨앗 주머니가 풍성하게 느껴진다. 영등대왕이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다에 서 있는 며느리의 모습은 왜 그렇게 추워 보이는지. 아직 겨울의 시간이 남은 탓일 거다. 그래도 영등할망은 봄을 가지고 오신다. 바람과 맞서지 않고 바람을 품어낼 줄 아는 귀덕1리,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제주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곳. 알아보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제주의 신화와 역사가 있는 보물 같은 마을이다.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왕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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