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바다여명
↑시흥바다일출
이른 아침 바다의 추위가 느껴질 무렵 여명이 점점 짙어진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한 치도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는 듯 힘겨루기를 한다. 하늘과 바다는 서로 붉은 띠와 검은 띠를 나누어 가진다. 검붉은 선이 확연하게 그어진다. 그런데 곧 어두운 빛이 번진다. 변덕스러운 구름이 막상 해를 보여주기가 싫었나 보다. 실낱 같은 기대로 상기돼 있던 작은 행복을 탁탁 털어낸다. 그래 괜찮아. 황홀하게 검붉은 꽃띠를 마음에 받아 놓았으니 괜찮아. 인공섬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는데 번져오는 햇살의 기운에 목덜미가 간지럽다. 멀리 마실 나갔던 설문대 할망이 급하게 해가 보고 싶어 돌아온 걸까? 뒤를 돌아보니 붉은 꽃무더기가 두둥실 솟아 있다. 저 생긴 대로 붉은 미소를 품고 하늘로 타오른다. 성산포 들판을 감싸고 이 겨울마저 다 안을 기세다. 눈이 부시다. 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어느새 가슴 깊이 묻어둔 작은 소망이 성산일출봉의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다. 순간 떨리는 마음을 안고 급하게 뜀박질을 한다. 바다 물살 가까이 다시 다가선다. 손을 내밀어도 잡아볼 수 없는 걸 알지만 손가락 사이로 햇살을 휘감는다. 기어이 붉디붉게 물든 해의 광채가 쭉 뻗어 바로 내가 서 있는 시흥리로 향해 온다. 기쁘고 놀랍다. 역시 해는 지난한 삶에게도 찬란하게 빛을 골고루 내준다. 이것만으로도 오늘 여행은 다한 기분이다. 왜 이렇게 홀가분할까? 숨겨 두었던 꿈이 꼭 이루어질 것 같은 이 기분은 무얼까? 이 순간 세상을 다 얻은 듯 발걸음이 가볍다. 세상을 향해 빛나는 일출을 나눠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