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닥한 제주 마을

제주의 시작, 일출의 기운이 뻗어가는 시흥리 마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계절의 변화가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겨울의 복판에 서 있다. 궂은 날씨가 거듭 반복되고 따듯한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점점 적어진다. 슬슬 지난 계절 지난한 삶에게도 아낌없이 평등하게 뿌려졌던 빛이 그립다. 성산포 벌판에 달려가고 싶다. 제주에서 가장 일찍 해가 떠오르는 곳 성산읍 가장 동쪽에 일출의 맥이 뻗어 가는 마을, 시흥리가 있다.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제주 공감곱닥한 제주 마을 (아름다운 제주 마을)
제주의 시작, 일출의 기운이 뻗어가는 시흥리 마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계절의 변화가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겨울의 복판에 서 있다. 궂은 날씨가 거듭 반복되고 따듯한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점점 적어진다. 슬슬 지난 계절 지난한 삶에게도 아낌없이 평등하게 뿌려졌던 빛이 그립다. 성산포 벌판에 달려가고 싶다. 제주에서 가장 일찍 해가 떠오르는 곳 성산읍 가장 동쪽에 일출의 맥이 뻗어 가는 마을, 시흥리가 있다.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설문대 설화의 바다, 시흥리 바다

해가 떠오를 기미가 보인 날, 이른 새벽에 채비를 한다. 누구에게 무엇에게 다가감은 두근두근 설레임이다. 시흥 바다로 어떻게 다가설까? 길을 나설 때마다 되풀이되는 갈등, 산을 옆에 끼고 갈 것인지 바다를 지척에 품고 갈 것인지 늘 고민이다. 그래, 오늘은 바다를 느끼며 가고자 하는 그곳으로 길을 떠나자. 일주도로와 해안도로를 달려 태평양 푸른 물결과 두산봉의 정기가 맞닿은 시흥리 그 바다로 가까이 가까이 다가간다. 포구 옆 인공섬 안으로 들어서 거칠기로 유명한 그 바다로 바싹 다가선다. 여명 속에 우도, 성산일출봉, 식산봉이 뚜렷하게 펼쳐진다. 성산일출봉과 식산봉에 양다리를 걸치고 앉았던 제주섬 창조주 설문대 할망의 모습이 어두운 바다 위로 오버랩 된다. 그 옛날 화산이 바다를 만날 때 설문대 할망은 섬을 창조하고 제주 사람들은 마을을 일구었다. 설문대 할망이 만든 성산과 우도 사이 바다 물살은 유난히 거칠고 빠르다. 하지만 전날 파도가 거세게 바다를 뒤집어 놓았는지 지금 이 순간 물살은 흔들리면서도 고요하다. 멀리에 군데군데 모여 있는 구름이 보인다. 처음부터 바다의 모든 것이 완벽하길 바란 적이 없기에 평화로운 마음으로 해가 뜨길 기다린다.

오랜 여명 끝 떠오르는 붉은 꽃무더기

↓시흥바다여명
시흥바다여명 시흥바다일출
↑시흥바다일출
이른 아침 바다의 추위가 느껴질 무렵 여명이 점점 짙어진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한 치도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는 듯 힘겨루기를 한다. 하늘과 바다는 서로 붉은 띠와 검은 띠를 나누어 가진다. 검붉은 선이 확연하게 그어진다. 그런데 곧 어두운 빛이 번진다. 변덕스러운 구름이 막상 해를 보여주기가 싫었나 보다. 실낱 같은 기대로 상기돼 있던 작은 행복을 탁탁 털어낸다. 그래 괜찮아. 황홀하게 검붉은 꽃띠를 마음에 받아 놓았으니 괜찮아. 인공섬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는데 번져오는 햇살의 기운에 목덜미가 간지럽다. 멀리 마실 나갔던 설문대 할망이 급하게 해가 보고 싶어 돌아온 걸까? 뒤를 돌아보니 붉은 꽃무더기가 두둥실 솟아 있다. 저 생긴 대로 붉은 미소를 품고 하늘로 타오른다. 성산포 들판을 감싸고 이 겨울마저 다 안을 기세다. 눈이 부시다. 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어느새 가슴 깊이 묻어둔 작은 소망이 성산일출봉의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다. 순간 떨리는 마음을 안고 급하게 뜀박질을 한다. 바다 물살 가까이 다시 다가선다. 손을 내밀어도 잡아볼 수 없는 걸 알지만 손가락 사이로 햇살을 휘감는다. 기어이 붉디붉게 물든 해의 광채가 쭉 뻗어 바로 내가 서 있는 시흥리로 향해 온다. 기쁘고 놀랍다. 역시 해는 지난한 삶에게도 찬란하게 빛을 골고루 내준다. 이것만으로도 오늘 여행은 다한 기분이다. 왜 이렇게 홀가분할까? 숨겨 두었던 꿈이 꼭 이루어질 것 같은 이 기분은 무얼까? 이 순간 세상을 다 얻은 듯 발걸음이 가볍다. 세상을 향해 빛나는 일출을 나눠주고 싶다.
심돌정신
↑심돌정신
뒤로 두산봉이 보이는 송난포구
↑뒤로 두산봉이 보이는 송난포구

제주가 시작되는 곳, 시흥리

제주가 시작되는 마을 시흥리는 1905년경 정의현의 첫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글자 그대로 ‘비로소 흥성하는 마을’이라는 의미가 있다. 옛 이름은 심돌개에서 온 ‘심돌’이다. 마을에 힘센 장사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며 곳곳에 산돌이 산재해 있어서 자연 발생적으로 ‘심돌(力乭)’이라고 불렸다고 전해온다. 탐라순력도 등 고서에 표기된 ‘역석포(力石浦)’, ‘역돌포(力乭浦)’, ‘역석을포(力石乙浦)’는 ‘심돌’에서 비롯된 한자 차용 표기이다. 제주 올레 1코스가 시작되는 시흥리는 일주동로를 사이에 두고 상동과 하동의 자연마을이 있다. 마을 어느 곳에서든 막힘이 없어 어디에서 걸어도 시원스럽게 뚫려 있는 풍광과 마주한다. 동쪽으로는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낯선 여행객을 다정히 마중하고 남쪽으로는 두산봉(말미오름)이 함께 나뒹구는 지상의 모든 것을 병풍처럼 포근하게 얼싸안는다.
인공섬을 당당히 걸어 나온다. 종달리 지미봉이 보이고 시흥리 마을의 상징 두산봉도 풍모를 드러낸다. 섬을 나오면서 송난포구의 모습을 잠시 살펴보고 바로 호국영웅 강승우로 시작점을 향해 걷는다.

호국영웅의 도로 강승우로

  • 강승우로에서 바라본 우도와 갈메기들 ↑강승우로에서 바라본 우도와 갈메기들
  • 호국영웅 강승우 중위 기념비 ↑호국영웅 강승우 중위 기념비
  • 해안가를 따라 쭉 뻗은 강승우로 ↑해안가를 따라 쭉 뻗은 강승우로
강승우로 시작점은 제주의 시작과 끝을 한꺼번에 밟아볼 수 있는 곳으로 시흥리와 종달리가 합쳐지는 지점이다. 시흥리는 힘센 장사와 관련된 전설이 많이 전해진다. 큰 돌이 곳곳에 깊이 박혀 있는 땅 위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 했던 시흥리 마을 사람들은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가 강해졌고 단결력도 뛰어났다. 고난에 굴하지 않는 이러한 강인한 ‘심돌(力乭)정신’이 바탕이 되어 삼군신(三軍神)의 한 분으로 추앙받는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 강승우 중위가 태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국영웅 강승우로는 백마고지의 전투 영웅 강승우 중위를 기리기 위한 명예 도로다. 해맞이 도로로 경관이 일품이다. 구간이 짧아 바다와 함께 긴 호흡으로 걷는다. 시간을 잃어버리고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몰두한다. 짭짜름한 바다 내음이 혀끝에 느껴진다. 태평양을 향해 날갯짓하는 갈매기 군단의 마음을 따라 하늘 위도 날아본다. 해풍에 자유롭게 몸을 맡기고 싱싱한 햇살을 듬뿍 받고 있는 준치 앞을 서성인다. 시작점에 도착하니 아쉽다. 멈추기가 싫다. 철새 도래지 갈대밭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성산포 들판을 감싸 안은 두산봉

용천수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 조성된 간척지에 무성한 갈대가 바람 따라 서걱댄다. 갈대밭을 옆에 끼고 두산봉을 향해 걷다 보면 시흥리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큰물의 흔적도 보인다. 오래전 마을 주민들은 30여 년간 직접 등짐을 지고 마차로 흙을 날라서 간척지를 만들었다. 주민들은 간척지가 옥토가 되길 간절히 원했을 거다. 하지만 짠물이 계속 솟아나는 땅에서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었다. 갈대밭 위로 꿈을 지워야 했던 주민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애잔하게 그려진다. 이제 이곳으로 남쪽으로 길을 향하는 철새가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 든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겨울바람에 기대어 허허로운 갈대밭과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피어난 하늘 사이로 두산봉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를 펴고 누워 ‘어서 오라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두산봉은 올레길에서 만나는 첫 오름이다. 제주에 몇 없는 전형적인 이중 화산체이다. 생긴 모양이 되(斗)에 곡식을 수북하게 쌓은 모습과 같다고 하여 말 두(斗)를 써서 두산봉(斗山峰)이라 부르고 말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말미오름이라고도 한다. 성산포 들판에서 저 멀리 태평양 바다까지 넓게 감싸 안은 두산봉 정상에서의 풍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영주십경에 뒤지지 않는 절경이다. 시흥초등학교에서 100여 미터를 걸어내려 가면 울담과 밭담이 길게 어울려 있는 돌담길이 있다. 길 따라 알록달록 야트막한 지붕들이 저마다 고개를 시원스레 내민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겨울 무들은 흙 위에 열을 지어 초록 기지개를 뿜어낸다. 계절을 잊은 노란 유채꽃도 가끔씩 겨울바람 앞에 살랑인다. 성산포 들판 위 우뚝 솟은 두산봉을 찾아가는 길은 더없이 가볍고 즐겁다.
  • 두산봉을 배경으로 펼쳐진 갈대밭 ↑두산봉을 배경으로 펼쳐진 갈대밭
  • 두산봉 가는 길의 마을 풍경 ↑두산봉 가는 길의 마을 풍경
  • 두산봉 가는 길의 밭담 ↑두산봉 가는 길의 밭담
  • 마을의 시흥초등학교 풍경 ↑마을의 시흥초등학교 풍경

한결같이 품어주는 시흥리

능선을 따라 오르면 곧 두산봉 정상이 나타난다. 파란 바다 위로 성산일출봉이 정면으로 보이고 왼쪽으로는 우도가 가늘게 쭉 뻗어 있다. 아래로는 얼기설기 쌓여진 돌담으로 농부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바느질한 조각보들이 성산포 들판을 가득 수놓고 있다.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제주다움이 한눈에 펼쳐진다. 철 따라 바뀌는 여러 농작물과 바닷바람에 몸을 숙인 야트막한 집들이 곱상하게 서로 어울려 있다. 변화하는 바다는 빛의 깊이에 따라 멀리서 제각각 다른 색을 뽐낸다. 여기가 바로 제주구나! 큰 숨을 쉬며 두산봉의 상쾌한 기운을 들이마신다.
두산봉 산책로를 내려와 마을 안 울담과 올레담을 따라 걷다 보면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팽나무와 심돌정신의 상징 듬돌이 보인다. 마을 주민들이 힘겨루기를 했던 듬돌을 들어 보는데 역시 힘이 역부족이다. 괜스레 빈 몸으로 사색의 날개를 활짝 편 나무 따라 하늘을 올려다본다. 맑았던 하늘이 먹구름 속 빗살이다.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한다. 시흥해녀의 집 앞에 있는 영등하르방 상을 찾아간다. 너무나 소박한 자태로 서 있어 이게 뭘까? 하는 생각도 못 하고 쉽게 지나치는 곳이다. 영등하르방은 마을 주민들의 평안을 가져오는 수호신이다. 수호신 앞에서 새해를 기대하면서 또 한 번 숨겨둔 마음을 열어 보인다.

겨울에 기대어 하늘 향해 기어이 타오르는 해를 봐서 좋다. 태평양 바다가 푸르지 않으면 어떻고 성산포 들판이 모두가 초록이 아닌들 어떠랴. 바다를 타고 오는 바람이 거칠고 우왕좌왕 날씨에 길 헤매어도 괜찮다. 시흥리 그 바다와 두산봉이 무엇이든 누구든 언제나 한결같이 품어주고 반겨주기 때문이다.
  • 두산봉 정상에서 바라본 마을과 성산일출봉, 식산봉 ↑두산봉 정상에서 바라본 마을과 성산일출봉, 식산봉
  • 시흥리 마을 전경 ↑시흥리 마을 전경
  • 시흥해녀의집 앞 영등하르방상 ↑시흥해녀의집 앞 영등하르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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