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 제주의 하늘과 바다 위에 철새들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진다.
머나먼 길을 준비하는 날갯짓은 계절이 바뀌는 신호이자, 생명이 전하는 첫 이야기다.
갯벌과 습지, 잔잔한 수면 위에서 시작되는 이 여정을 따라가 보자.
글편집실사진제주관광공사
철새가 전하는 계절의 속삭임
비자림 숲속 깊숙이 들어갈수록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평온함을 만들어낸다.
이곳에서는 제주 고유의 야생화와 곤충, 조류들이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순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연에 귀 기울여 보자. 그 순간, 비자림이 오랜 세월 간직해온 자연의 속삭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성산 앞바다의 생명 무대, 종달리·하도리 해안
성산일출봉을 병풍처럼 두른 이 해안은 매년 겨울과 이른 봄, 수많은 철새가 찾는 동부의 쉼터다.
넓고 완만한 갯벌과 얕은 바다는 도요새, 물떼새, 큰기러기, 흑두루미의 휴식과 먹이터가 된다.
특히 하도리에서는 수천 마리의 철새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장관이 펼쳐진다.
갯벌 체험과 탐조 활동이 가능한 하도철새전시관에서 철새의 생태와 여정을 배우며,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날개짓과 파도 소리가 섞인 제주의 고요를 느낄 수 있다.
갯벌이 만든 철새의 식탁, 성산리·오조리·고성리 해안
성산일출봉 남쪽과 서쪽 해안은 조수 간만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갯지렁이와 조개류가 드러나고,
노랑부리저어새, 재갈매기, 민물가마우지 등이 모여든다.
특히 멸종위기종 노랑부리저어새는 이곳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귀한 손님이다.
오조리 마을에서는 고즈넉한 어선과 철새가 함께 있는 풍경이,
고성리 해안에서는 일출과 철새의 비행이 어우러진 장면이 여행자의 카메라에 담긴다.
서쪽 하늘을 가르는 날갯짓, 용수리 저수지
제주 서쪽 끝에 자리한 용수리 저수지는 서부 철새들의 중요한 휴식처다.
맑고 잔잔한 수면 위로 가창오리, 청둥오리, 왜가리, 물오리류가 무리를 지어 유영한다.
겨울이면 수천 마리의 오리 떼가 저수지를 뒤덮고, 하늘로 날아오를 때 들리는 파도 같은 날갯짓은 숨을 멈추게 한다.
주변의 용수포구, 차귀도, 수월봉과 함께 둘러보면 철새 관찰과 서부 해안 여행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