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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소담이 만난 사람들

제주 들꽃을 기록하는 사람 한비 김평일 선생
야생화라고도 하는 들꽃은 말 그대로 파종 또는 재배하지 않은, 들(야생)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나는 꽃을 말한다. 인간이 가꾸어내지 않기 때문에 자리 잡은 터의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자연의 보고인 제주 역시 다양한 들꽃이 자생하고 있고, 특히 제주에서만 발견되는 토종 들꽃의 종류도 다양하다. 한비 김평일 선생은 이러한 제주 들꽃을 20년째 들여다보며 기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편집실 사진정익환, 김평일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한비 김평일 선생(만 82세)은 도내 초등학교에서 교장까지 지내며 40년간 교편을 잡았다. 교직에 있는 동안 한국교육자 대상을 받았을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은퇴 이후에는 (사)제주바다사랑실천협의회의 창단멤버(2005년)로 참여해 5년간 회장직에 몸담으며 제주바다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에는 한라일보사가 주관한 한라환경대상에서 전체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라야생화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제주의 들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보릿고개 시절이라고 아시나요?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때가 1960년대입니다. 처음부터 목표를 가지고 공부했던 건 아니지만 교육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교사의 꿈을 꾸게 되었어요. 교사가 되어서는 그저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보람된 일이었거든요. 평교사에서 교장까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교사라는 일이 그가 생애 처음 열정을 쏟았던 꿈이라면, 사진은 그가 평생을 두고 열정을 쏟은 두 번째 관심사였다. 우연히 선물 받은 목측카메라(눈대중으로 초점을 맞추는 방식인 카메라) 한 대로 인해 교직생활 내내 운동회, 소풍, 학예회 등 학교 행사에서 전담 사진사(?)로 활약했다. 1960년대 후반 군대생활 당시 월남전에 파병되기도 했는데, 그때에도 카메라를 구입해 월남전쟁터와 참전병사들, 베트남풍광을 카메라에 담았다.
“저는 한 번 시작한 일은 대충하는 법이 없습니다. 카메라를 접한 건 우연한 기회였지만 기왕 카메라가 생겼으니 이것저것 열심히 찍어보자는 마음이 생겼죠. 이후에는 그냥 찍지 말고 제대로 찍어보자는 결심이 섰고요. 제가 어디에 몸담고 있든 제 곁엔 카메라가 있었고, 그 속에는 제가 열정을 쏟은 일들의 기록이 담겨졌습니다.”
50여 년 전에는 제주도 민속과 풍경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었고 지금부터 20여 년 전부터는 제주의 들꽃에 빠져 사진을 찍고 있다. 그리고 현재 100여 명의 회원이 등록된 한라야생화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다.
김평일 선생이 독학으로 들꽃을 공부했던 교재들
↑김평일 선생이 독학으로 들꽃을 공부했던 교재들
흐린내생태공원 정자 위 김평일 선생
↑흐린내생태공원 정자 위 김평일 선생

20년 한결같이 사랑한 제주의 들꽃

김평일 선생의 렌즈가 처음 담아냈던 건 사람이었다. 이후에는 풍경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지금은 들꽃이다. 이러한 시선의 움직임은 어쩌면 당연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람이 머무는 환경으로, 다시 환경을 이루는 자연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제주에는 2,0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내에서 식물 다양성이 풍부한 곳으로 꼽히는 울릉도의 5~600여 종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이다. 이러한 천연 자연의 보고인 제주도에는 그만큼 다양한 들꽃이 존재한다. 이름에서 ‘제주, 한라, 영주, 탐라’ 등이 붙어 있는 것은 오직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토종 들꽃이다.

“사람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밖에 안 되는 줄기에 좁쌀만한 크기의 꽃이 매달려 있는데, 보이는 사람 눈에만 그 존재가 빛이 나요. 이것이 바로 들꽃의 매력입니다. 게다가 오직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꽃들을 찾아냈을 때는 어떤 희열감도 느낄 수 있어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한 구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들꽃의 가치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 어여쁜 꽃들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계속 산으로, 들로 이끄는 것 같아요.”
(사)마로 양호성 대표
들꽃도 제각각이다. 오후 4시, 딱 1시간만 꽃봉오리를 피웠다가 닫아버리기도 하고, 새벽이슬을 맞아야만 꽃문을 활짝 열어젖히기도 한다. 하얗게 눈이 쌓은 설산 한 가운데 새빨갛게 열매를 맺는 겨울딸기도 있다. 계절마다 볼 수 있는 얼굴이 있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하니 매일 보러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저는 일주일에 6일을 출사 나가요. 나갈 때마다 마누라에게 ‘나 애인 만나러 갔다 올게’ 합니다. 온 길가, 들판, 강, 산, 바다, 숲에 핀 들꽃이 다 제 애인이거든요. 자기가 허락한 시간에만 얼굴을 보여주니 그 시간을 놓칠 수 없고, 제 자리에 늘 있는지 안부가 궁금하니 하루를 거를 수도 없답니다.”
↓들풀들 사이 생각에 잠긴 김평일 선생
들풀들 사이 생각에 잠긴 김평일 선생
↓섬쥐깨풀
섬쥐깨풀
전주물꼬리풀
↑전주물꼬리풀
비온 뒤 물에 잠긴 전주 물꼬리풀풀
↑비온 뒤 물에 잠긴 전주 물꼬리풀

지키고 싶은 제주의 아름다움

선생이 그토록 사랑하는 들꽃이건만 세월이 무상하게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는 꽃들이 늘어가고 있다. 기후변화가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에 의한 손실이 뼈아프다. 멋모르고 밟아서 없애고, 예쁘다며 무작정 뽑아가거나 판매 목적으로 채취하거나 몸에 좋다며 캐내어 가는 등 이유도 다양하다. 무분별한 제초작업, 농약살포, 난개발도 한 몫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어제 가서 보니 세 뿌리만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0년 전 제 사진첩에 담겨 있는 들꽃 중 상당수는 다시 보지 못해요. 그렇게 멸종이 되었나 싶은 것 중에 인터넷상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그대로 그곳에 두고 보았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아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김평일 선생은 그들의 서식지를 보존하고, 무분별하게 훼손되지 않게 하는 일이야 말로 결국 제주의 자연을 지키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나비나 벌이 아닌 개미에게 꿀을 주는 들꽃도 있고, 수변의 질을 개선해주는 역할을 하는 풀도 있다. 무엇하나 자신의 역할이 없는 것이 없다.
“제주는 곶자왈로 대표되는 야생 그대로의 자연이 보존되고 있는 자연의 보고입니다. 들꽃은 그 일부분이죠. 그러나 그 생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땅에서 피어오른 꽃이라 해도 다 같지 않아요. 특정 균사가 있어야 발아하는 꽃도 있고, 물과 일조량 등 일정 조건이 필요한 꽃도 있고, 나무나 바위에 기생해야만 피는 꽃도 있어요.”
예를 들어 억새가 자라나는 땅에서 발견되는 균사를 발아체로 삼는 들꽃이 ‘야고’이다. 억새가 자라지 못하는 땅에서는 야고가 살 수 없다. 소나무밭의 균사 덕분에 근처에는 대흥란이 잘 자란다. 이들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식생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들꽃이 멸종된다는 것은 억새와 소나무의 식생에도 위험요소가 생긴다는 뜻이다. 자연의 일부가 훼손되면 연쇄적으로 생태계의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멸종위기동물에 비해 식물은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 딴에는 제주환경일보를 통해 기획보도를 하기도 하고, 고발성 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식물도 자연의 일부이며, 그들이 멸종되는 곳에서 인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평일 선생은 제주들꽃과 멸종위기식물에 대해 알리기 위해 현재 제주환경일보에서 <한비 김평일의 제주들꽃 이야기>를 연재 중이다. 들꽃의 꽃말과 이름의 유래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것으로 10여 년째 연재 중이며 현재 800여 편이 게재되어 있다. 이밖에도 2020년부터 <기획연재-제주에서 사라지는 식물들>을 통해 멸종위기 식물의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멸종위기 제주 자생식물들

  • 금자란 ↑금자란
  • 닭의 난초, 만년콩, 비자란 ↑닭의 난초, 만년콩, 비자란
  • 영주제비란, 제주개황기, 제주방울란 ↑영주제비란, 제주개황기, 제주방울란
  • 지네발란, 콩짜개란, 한라송이풀 ↑지네발란, 콩짜개란, 한라송이풀

· 한비 김평일의 제주들꽃 이야기   바로가기 →

· 제주에서 사라지는 식물들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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