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쿰다(제주를 품다)제주 문화 돋보기

제주 문화 돋보기

고난과 극복의 상징 삼다(三多) 삼무(三無)
제주도에는 이것 세 개가 많고, 이것 세 개가 없다고 해 ‘삼다, 삼무’라는 말이 있다. 많은 것 세 개는 돌, 바람, 여자. 없는 것 세 개는 도둑, 거지, 대문이다. ‘삼다’는 유달리 척박했던 제주의 환경을 집약하고 있고, ‘삼무’는 이를 대처하고 극복한 제주인의 강인한 의지가 담겨 있는 말이다.
편집실 사진제주관광공사 자료출처디지털제주문화대전

고난의 상징, ‘삼다’

제주도에는 돌이 많아 집의 담장도 돌로 쌓고, 농토의 경계도 돌을 쌓아 구분한다. 제주인은 길돌 구들 위에서 태어나서 산담에 둘러싸인 작지왓(자갈밭)의 묘 속에 묻힌다. 사는 집의 벽체가 돌이며, 또 울타리와 올레 그리고 수시로 밟고 다니는 잇돌(디딤돌)이 모두 돌이다. 생산 활동의 터인 밭들이 돌밭(자갈밭)이요, 밭담도 모두 돌이요, 어장도 온통 돌이다. 그래서 제주인들은 스스로 ‘돌에서 왔다가 돌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돌이 많으니 기름진 땅이 부족하고 물이 귀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지만 자갈과 암괴로 덮여 있는 탓에 대부분의 빗물이 고여 있지 못하고 빠져나가버렸다. 지금은 지하수를 개발하여 물 걱정에서 벗어났지만, 과거에는 물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제주의 돌담
↑제주의 돌담
제주도의 바람은 샛바람(남동풍), 마파람(남풍), 갈바람(서풍) 등 종류도 다양하고 이름도 여러 가지이다. 제주도의 연평균 풍속은 4.7m로, 서울 2.5m, 중강진 1.3m에 비해 훨씬 강하다. 태풍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통과하는 곳이 제주도이다. 제주도가 이처럼 강풍과 다풍 지역이 된 것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이라는 위치, 그리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조건에 기인한다. 바람은 한여름의 가뭄을 해갈시키기도 하고, 수중의 해초류를 뜯어 올려 거름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생존에 유리함도 주었지만, 불리한 조건을 더 많이 주었다. 2월에 부는 영등 바람이나 태풍으로 인해 재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풍랑으로 바다 일을 보기 힘들었으며, 배를 띄우기 힘드니 육지와의 교류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비양도의 바람
↑비양도의 바람
바람은 제주인의 의·식·주 등 모든 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미끈한 ‘상모루(용마루)’를 하고 지붕을 단단하게 얽어맨 다동분립형(多棟分立型)의 살림집을 갖게 된 것, 수건이나 정동모(정동벌립)를 착용하는 것, 해조류를 퇴비로 이용하는 것, 등짐으로 운반하는 것, 큰 목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 등 모두가 바람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는 이처럼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 몫을 맡아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성들 대부분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일을 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고된 물질이나 밭일 또는 집안일을 담당해 내며 격랑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해녀들은 바다 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물속 20m까지 오락가락하면서 주어진 삶을 다져왔다. 여성들이 집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밭일이나 바다 일을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해냈기에 여자가 많은 섬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인구 통계를 분석, 인지한 결과가 아니라 직관에 의한 인식이었다.
제주생활터전, 밭담
↑제주생활터전, 밭담
고된 물질을 견딘 해녀들
↑고된 물질을 견딘 해녀들

극복의 상징, ‘삼무’

‘도둑이 없다’라 함은 노동의 대가 없이 함부로 남의 물건을 취하는 이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제주인들의 정직하고 순박한 정서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내고자 했던 생활력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제주인들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정직함과 순박함을 생명으로 삼았고 인간 본연의 질서를 목숨보다 더 존중하였다. 이러한 제주인들의 생활 의지의 바탕에는 박대 속에서도 자아를 굽히지 않는 자강(自彊)의 의지와 굶주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부정과 불의는 저지르지 않는다는 기질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지가 없다’는 것은 근검·자주·자립·자조·자족의 생활 원리가 제주인의 일상에 뿌리 깊이 내려졌다는 말이 된다. 제주인들은 땅이 척박한 만큼 오랜 세월 가난에 시달려야 했으며, 번번이 몰아치는 바람에 온갖 재난의 위협을 참고 견디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일을 했으며 물건을 철저히 아껴 썼다. 자신의 생활은 하나에서 열까지 혼자 짊어지고 감당하였으니, 노동을 외면한 수익을 바라거나 남을 의지하고 빌어먹는 일이란 사람의 삶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대문 대신 정낭
↑대문 대신 정낭
1950년대까지만 해도 거지는 숫자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였는데, 마을에 나타났다고 하면 ‘동녕바치’라고 해서 오히려 빈객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도둑이 없고 거지 없는 조건은 ‘대문이 없다’는 풍속을 낳았다. 재래의 제주 가옥에는 대문이 없었고, 대신 길에서 마당까지 연결된 골목인 올레에 양편으로 정주목을 세우고 거기에 정낭을 걸쳐 두었다. 정낭을 내리거나 걸쳐 두어 주인이 있고 없음을 나타내었고, 마소의 침입을 방지하는 역할도 했다. 올레와 정낭의 존재야말로 인내와 정도를 아는 마음가짐, 상호 신뢰의 태도를 함축하는 것이다. 요컨대 도둑 없음은 정직하고 순박하게 살면서 질서를 지켜나가는 제주인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고, 거지 없음은 어떤 가난과 곤경에 부닥치더라도 스스로 부지런히 아껴 살아나가려는 자력적인 요소가 강하다. 대문 없음은 서로 믿고 도우며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배어 있다.
※ 참고문헌
· 석주명, 『제주도수필집』(보진재, 1968)
· 아름다운 제주정신』(제주도, 1987)
· 김영돈, 『제주민의 삶과 문화』(제주문화, 1993)
· 송성대, 『문화의 원류와 그 이해』-제주문화 원류 찾기 2-(각,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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