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상징, ‘삼다’
제주도에는 돌이 많아 집의 담장도 돌로 쌓고, 농토의 경계도 돌을 쌓아 구분한다. 제주인은 길돌 구들 위에서 태어나서 산담에 둘러싸인 작지왓(자갈밭)의 묘 속에 묻힌다. 사는 집의 벽체가 돌이며, 또 울타리와 올레 그리고 수시로 밟고 다니는 잇돌(디딤돌)이 모두 돌이다. 생산 활동의 터인 밭들이 돌밭(자갈밭)이요, 밭담도 모두 돌이요, 어장도 온통 돌이다. 그래서 제주인들은 스스로 ‘돌에서 왔다가 돌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돌이 많으니 기름진 땅이 부족하고 물이 귀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지만 자갈과 암괴로 덮여 있는 탓에 대부분의 빗물이 고여 있지 못하고 빠져나가버렸다. 지금은 지하수를 개발하여 물 걱정에서 벗어났지만, 과거에는 물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제주의 돌담
제주도의 바람은 샛바람(남동풍), 마파람(남풍), 갈바람(서풍) 등 종류도 다양하고 이름도 여러 가지이다. 제주도의 연평균 풍속은 4.7m로, 서울 2.5m, 중강진 1.3m에 비해 훨씬 강하다. 태풍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통과하는 곳이 제주도이다. 제주도가 이처럼 강풍과 다풍 지역이 된 것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이라는 위치, 그리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조건에 기인한다. 바람은 한여름의 가뭄을 해갈시키기도 하고, 수중의 해초류를 뜯어 올려 거름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생존에 유리함도 주었지만, 불리한 조건을 더 많이 주었다. 2월에 부는 영등 바람이나 태풍으로 인해 재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풍랑으로 바다 일을 보기 힘들었으며, 배를 띄우기 힘드니 육지와의 교류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비양도의 바람
바람은 제주인의 의·식·주 등 모든 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미끈한 ‘상모루(용마루)’를 하고 지붕을 단단하게 얽어맨 다동분립형(多棟分立型)의 살림집을 갖게 된 것, 수건이나 정동모(정동벌립)를 착용하는 것, 해조류를 퇴비로 이용하는 것, 등짐으로 운반하는 것, 큰 목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 등 모두가 바람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는 이처럼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 몫을 맡아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성들 대부분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일을 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고된 물질이나 밭일 또는 집안일을 담당해 내며 격랑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해녀들은 바다 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물속 20m까지 오락가락하면서 주어진 삶을 다져왔다. 여성들이 집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밭일이나 바다 일을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해냈기에 여자가 많은 섬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인구 통계를 분석, 인지한 결과가 아니라 직관에 의한 인식이었다.
↑제주생활터전, 밭담
↑고된 물질을 견딘 해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