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속담에 “살아서 한 번 죽어서 한 번 호사한다.”는 말이 있다. 척박한 땅에 벼농사를 짓지 못하다보니 가난했고, 지난한 침입의 역사 속에서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기에 생겨난 말이었을 것이다. 이 말 속에 살아서 호사는 혼례를, 죽어서 호사는 장례를 의미한다. 지난번 혼례문화에 이어 이번호에서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장례문화를 들여다본다.
글편집실사진제주관광공사
‘조관’ 때 팥죽 쑤어 오는 사돈
제주도 장례식은 임종-수시-초혼-염습-조관-입관-출구-발인-운상-하관-성분-초우-귀양풀이-재우-삼우-졸곡-소상-대상-시왕맞이*-담제 순서로 이뤄진다. 이중 ‘조관’은 시신을 넣을 관 안쪽에 창호지를 도배하고 바깥에 검은 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날 사돈집에서 팥죽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팥죽을 대접하는 것은 상을 당해 경황이 없는 상제들이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할 것을 염려해 사돈집이 챙겨주었다는 설도 있고, 악귀를 쫒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준비된 관에 시신을 입관할 때는 망인의 머리털, 손톱, 발톱을 깎아 각기 주머니에 담아 관함에 함께 넣고, 빈곳에는 망인의 옷을 말아 채운다고 한다. 입관한 뒤 상주는 제대로 된 상복을 입고 빈소를 차리게 된다.
* 시왕맞이 : 삼년 째 되는 해 영혼의 저승생활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의례
↑상례 때 사돈집이 챙겨주는 팥죽
↑서귀포 지역 상례 모습
제주도에만 있는 ‘일포’ 문화
흔히 부고장을 받으면 입관 날짜와 발인 날짜 그리고 장례식이 열리는 장소가 적혀 있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하나 더 추가되어 있다. 바로 ‘일포’ 날짜이다. ‘일포’는 발인 전, 문상객을 받는 날을 말한다. 초상을 치르기 전 처음으로 치르는 제례를 ‘성복제’라 하고, 발인 전날 신시(15시 ~ 17시)에 문상객을 받아 치러지는 제례가 일포제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상여가 나가는 발인 전날까지 문상객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제주에서는 일포가 아니면 문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3일간 장례를 치른다고 하면 부고일 다음 날이 일포, 그 다음 날에 발인이 이뤄진다. 간혹 이틀 뒤에 일포 날짜를 정하는 경우도 있어 제주도에서는 부고장을 받으면 일포 날짜를 먼저 확인한다고 한다.
남상제와 여상제가 있는 장례문화
제주도 내 산남지역에서는 장례일 아침과 점심은 딸들이 담당해왔다. 같은 마을에 살 경우 상두꾼이나 친척들이 딸의 집으로 가서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때 음식접대에 따른 일체의 시중도 딸의 시댁식구들이 도맡았다. 출가한 딸이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 경우 시가(사돈)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마차에 싣고 장지까지 가서 대접을 하거나 장지 가까운 적당한 곳에 재료를 날라다 그곳에서 음식을 마련해 대접하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만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는 아들을 (남)상제, 딸을 여상제라고 하여 장례 부조의 접수와 분배, 장례비용 분배에 참여하는 등 딸의 위상이 아들 못지않았다는 것이다.
↑제주표선민속촌동자석
‘망자를 모시는’ 동자석
돌이 많은 제주도에는 돌하르방으로 대표되는 석상문화가 발달돼 있다. 이는 장례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제주도 무덤 부근에는 무덤 속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동자석’이 종종 눈에 띈다. 모습은 무덤마다 제각각인데, 술을 따르거나 예쁜 새를 가슴에 안은 채 두 손을 가슴 위에 모은 모습도 있다.
이밖에도 제주 무덤의 특징은 주변에 돌담을 쌓아 만든 산담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장례 당일 장지에 간 사람들이 부조로 곳곳에 흩어져 있던 돌과 자갈을 모아 산담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또한 산담에는 망자의 출입문이라 해서 ‘신문’을 내어놓았는데, 망자의 머리를 중심으로 신문이 왼쪽에 위치하면 남자, 오른쪽에 위치하면 여자 묘라고 한다.
한편, 제주에서는 벌초를 하지 않으면 불휴를 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강했다. 해마다 음력 8월 1일이 되면 친족들이 모여 벌초를 했다. 학교들도 이날이면 벌초방학이라고, 임시 휴교일을 제정(2003년까지)해 벌초에 참여하도록 했는데, 놀랍고 재미있는 제주만의 풍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