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이어 내려오는 고향집에 서점을 열다
북타임은 10년 넘게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장을 역임했던 임기수 대표가 서귀포 시내에 첫 문을 열었던 서점이다. 장사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공간이 있으니 한 번 해보라는 주변 권유에 덜컥 231.4㎡(70평)이 넘는 넓은 공간에 서점을 차린 것이 시작이다.
“도서관장직을 내려놓고, 마냥 책이 좋아 유럽의 책마을을 찾아다닌 적이 있어요.
영국 헤이온와이, 프랑스 몽톨리외 등이 대표적인데, 그야말로 제 이상향이 그곳에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어요.”
↑북타임 입구에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상주견 '순데기'
임 대표가 예를 든 영국과 프랑스 책마을의 공통점은 모두 사람이 찾지 않는 시골마을이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서점이 들어서고 책마을이 형성되자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지금은 번영한 마을로 탈바꿈했다. 이 모습을 보며 임 대표는 자신이 바라는 서점의 모습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서점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교류하고, 책을 사랑하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북타임이 탄생했지만 현실은 냉혹했죠.
제 의도대로 많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지만 책이 팔리지 않으니 월세를 감당하기 너무 힘들었어요.”
결국 서점은 책을 팔아야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임 대표는 몇 번의 거처를 옮겨 다니다 지금의 터인 위미리에 자리 잡았다. 이곳은 임 대표가 나고 자란 고향집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비어있던 공간을 직접 개조해 서점으로 사용 중이다.
↑동네 어귀에서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북타임 간판
↑별채에 구성되어 있는 종합 분야 서적들
“제 고향마을은 대부분 귤 농가와 동백군락지로 형성되어 있는 제주의 시골마을이에요. 누구도 서점이 들어설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곳이죠. 다만 제가 나고 자란 집이고, 중학교 시절까지 추억이 가득한 지역이라 마음 편히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북타임 ver.2.0이 시작되었다. 어느 곳 하나 자신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손수 가꾼 공간에는 인문・사회 분야, 제주 분야, 그림책 분야 등 북타임만의 색깔이 가득 담겨 있다.
책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곳
북타임은 첫 시작부터 기존의 서점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차별점이 많았다. 대화를 자제하고 조용해야 하는 에티켓이 북타임에서는 필요 없다. 마음껏 대화하고, 책을 읽고, 차 한잔 마실 수도 있다.
“아마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했기 때문일 거예요. 어린이들에게 책을 낭송해주기도 하고, 즐겁게 놀면서 책을 즐겼거든요. 북타임에서는 무게를 잡을 필요 없어요. 발소리를 내고 목소리를 크게 낸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습니다. 서점이 꼭 이래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손수 꾸민 공간에서 편안해보이는 임기수 대표 모습'
그래서일까? 북타임은 서점이라기보다 북카페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본관 입구에 들어서면 중앙에 6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고, 각 도서 코너에도 작은 의자들을 두어 편하게 앉아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해둔 부분들이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들게 한다.
“지금도 장사에는 젬병이라 책을 팔 궁리보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오갈 수 있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동네 친구들이 커피만 마시러 오기도 하거든요. 밭일 오가며 들르는 분들도 많고. 돈 벌긴 글렀나봅니다. 하하.”
북타임이 이렇듯 동네 사랑방처럼 된 데에는 임 대표의 활동들이 한 몫 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동네 친구들과 합심해서 동네 어르신의 생애사를 듣는 강연을 진행 중이다. 매달 넷째 주 토요일 저녁 7시마다 동네 어르신 한 분을 모셔두고 제주의 잊힌 문화들, 옛날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 시간이 되면 동네사람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입소문이 났는지 요즘에는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고 있다고.
↑제주에 관한 책들로 서점 한 켠이 꾸며져 있다
↑인문사회 분야 서적들이 있는 공간'
“결혼문화, 장례문화 등을 비롯해 밭일 하는 과정 같은 것들도 옛날과 달라졌죠. 어르신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풍속 같은 것들도 있고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진귀한 이야기를 북타임에 오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2시간에 걸쳐 강연이 끝나면 북타임은 다시 친목을 도모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동네 친구가 직접 낚시로 잡은 생선, 옆집에서 얻어온 반찬 등으로 한상 거하게 차려놓고 이야기꽃을 피워낸다. 한 마을에 살며 누구 집 숟가락, 그릇 수도 다 알고 지내던 제주 특유의 마을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제주 책마을이 생길 때까지 북타임은 계속된다
북타임을 만들 때 영감을 주었던 유럽의 책마을처럼 이곳 위미리가 변모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임 대표는 손에 잡히지 않을 꿈같은 이야기라고 하면서도 이곳 제주라서 더 가능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희망을 엿보고 있다.
“동네 어르신 생애사 강연을 1년 정도 진행했는데, 곧 이 이야기를 엮은 책자도 만들 계획이에요. 기록으로 남기는 거죠. 이렇게 제주만의 이야기가 담긴 책자가 쌓여서 서점을 가득 메운다면 정말 멋질 거예요. 또 어떤 곳에서는 제주어로 된 그림책만 있는 서점도 만들 수 있겠죠. 그렇게 여기 골목 가득 서점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제주그림책연구회에서 출판한 서적들
↑그림책 코너에는 그림작가의 소개글도 붙어 있다
눈을 반짝이며 청사진을 그리다가도 어느새 “돈이 없어요”하며 체념하는 모습이 아직도 청년 같은 임 대표. 지금 이 마을에 서점은 북타임뿐이고, 여전히 이곳 어른들은 서점에 관심도 없지만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찾는 횟수가 늘어가는 것을 보며, 분명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한적해요. 그렇다고 관광객이 찾지 않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아요. 한적한 제주 시골마을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이곳에 숙소를 잡고, 시간을 내어 북타임에 들러주십니다. 여행 올 때마다 들르는 단골 관광객도 있을 정도에요. 유럽같은 성공사례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고향이라서 더욱 애정이 있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꿈일지도 모르겠다. 임 대표는 북타임의 시간이 언제까지 흐를지는 모르지만 허락하는 한까지 이 자리를 지키며, 언젠가는 이뤄질지 모를 책마을의 꿈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저는 제주다운 것들이 너무 좋아요. 제주그림책연구회에서 제주어로 된 그림책을 만든다든지, 제주 어르신 생애사 강연을 한다든지 하는 활동들 모두 제주의 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죠. 이를 위해 북타임의 공간은 언제든 열어둘 것이고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제주다움을 지켜나가며 북타임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평화로운 북타임의 시간을 담은 한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