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희 회장은 1947년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9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에는 유복한 집안이었다. 고조부가 제주현감을 지낸 명문가였고, 부친은 목장과 어장을 경영하며 부족함 없이 생활했다. 하지만 막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서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어머니 홀로 9남매를 키워내야 하는 현실은 가혹했어요. 저라도 어머니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 해녀 일이에요. 어린 시절 수영선수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보자 싶었죠. 제 키가 170㎝가 넘어요. 제 나이대에 비하면 아주 큰 키죠. 물질하는데 신체조건도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녀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열여덟 어린 나이에 뭍으로 떠나왔다. 큰 키에 수영실력 거기다 요령까지 좋아 금방 상군해녀로 성장했다. 하루에 따오는 전복양만 30㎏가 될 정도로 실력이 좋으니 입소문이 났고 다른 큰 배에 스카우트되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부산, 통영, 한산도, 포항 등을 옮겨 다니며 해녀의 삶을 이어갔다.
“당시에 실력으로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물질을 잘했어요. 덕분에 동생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도 보냈죠. 결혼하면서 물질을 그만두었지만 해녀로 지냈던 세월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거제도에 터를 잡게 되면서 해녀의 삶은 거두고 머구리배를 운영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그 시기부터 강영희 회장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예로부터 죄인의 귀향지였던 탓인지 제주에서 왔다고 하면, 게다가 여자라면 육지사람들에게 괄시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강영희 회장 역시 해녀라는 직업을 얕보고 제주사람이라며 무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았다.
“시댁식구부터 저를 색안경을 끼고 봤으니 말 다했죠. 괜히 억울하더라고요. 나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 당시에는 저 말고도 출향해녀 대부분이 겪는 아픔이기도 했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새마을여성회를 시작으로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계기였다. 수많은 단체 활동을 하면서 지역주민들을 살피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데 앞장섰다. 그는 거제시 새마을부녀회장, 주부교실 거제시연합회 회장, 거제시 의용소방대장, 거제시 교육청 산하 72개교 어머니연합회 회장, 대한민국팔각회 해송팔각회장, 민주평통자문위원 등을 두루 섭렵했다. 또한 지역을 대표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거제시 장목면 주민자치위원장, 장목면지 편찬위원장도 역임했으며 13년 동안 거제를 대표하는 봄 축제인 ‘대금산 진달래축제’의 축제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봉사 활동, 그리고 저소득 가정의 자녀 장학금 지급 등 기부 활동도 지속적으로 펼쳤다.
“이제는 제주여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대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박수갈채를 받게 되었습니다. 무시를 당한다고 움츠려들기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강영희 회장은 제주해녀로서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다. 제주에서 해녀 관련 행사가 열릴 때면 거제와 통영, 남해, 삼천포 등지의 해녀들을 인솔해 고향을 방문하기도 하고, 고향의 해녀들에게 출향해녀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2014년 거제시에 거주하는 제주 출신 해녀들을 중심으로 ㈔한라잠수나잠부녀회의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제주 출신 해녀들은 거제나잠협회에 가입돼 있었으나 여러 문제와 다툼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고 새로이 화합할 수 있도록 한라잠수나잠부녀회를 새로 조직한 것이다. 이밖에도 2019년 세계제주인대회 때는 출향 해녀로서의 삶과 제주여성의 긍지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기도 했다.
“선배는 후배에게 어른은 아이에게 겪은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문화가 생기고 전통이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제 경험과 지식을 전할 기회가 되면 최대한 응하려고 해요. 젊은 해녀가 점점 사라지고 고령화되고 있는 현 상황이 너무 안타깝거든요. 최대한 해녀 문화가 잘 계승될 수 있도록 미약하나마 제 힘을 보태고 싶어요.”
제주해녀로서 그의 자긍심은 제주도를 향한 헌신으로 이어졌다. 1989년 서부경남제주도민회 출범에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2014년 여성으로는 첫 도민회장에 취임, 2020년 2월까지 세 번 연임했다. 또 2005년부터 재외제주도민총연합회 직능 부회장을 수년간 맡으면서 도민회와 고향 제주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이 같은 헌신과 봉사를 인정받아 2016년 제주도 문화상(국내 재외도민 부문)과 2018년 김만덕상(봉사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