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방어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 1416년(조선 태종16)부터 1914년까지 약 500년 동안 행정구역을 세 개로 나눴다. 한라산 북쪽이 제주목, 한라산 남쪽은 둘로 나눠 서쪽이 대정현, 동쪽이 정의현이었다. 성읍민속마을은 오랜 세월 정의현의 도읍지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1423년(세종5) 성산읍 고성리에 있던 정의현 현청을 성읍으로 옮겨 오고 성을 쌓으면서 생겨난 마을로 현재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의고을 전통민속재현 축제를 진행하며 제주 전통문화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민속마을은 지금도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개방된 곳만 관람할 수 있다. 마을에서 제주의 전통술인 오메기술이나 고소리술을 직접 빚어보는 등의 체험도 할 수 있다. 안내판이 잘 되어 있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성읍민속마을 한복판에는 ‘천년수’라고 부르는 느티나무가 있는데 주변의 팽나무들과 함께 천연기념물 161호로 지정되었다. 이 나무들은 과거 성읍민속마을을 수호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나무의 키가 30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는 5m나 된다고 하니 이 나무를 통해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마을을 걷다보니 ‘원님물통’이라는 봉천수가 있었다. 아주 천천히 솟아올라 생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았지만 중산간 마을인 이 근처에서는 가장 깨끗한 물이었다고 한다. 양이 적어서 서민의 사용을 금하고 관아에서만 사용했다고 해서 ‘원님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식수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해서 마을 주민에게 여쭈어보니, 서민들은 고인물을 마시거나 성 밖에 있는 시건이물과 갈메못의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성읍민속마을 뒤편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역할을 했던 영주산을 올랐다. 영주산은 제주오름 중에서 분화구가 온전히 남아있지 않고 한쪽이 터져 내린 분화구로 말굽형 분화구에 속한다. 해발 325m의 낮은 오름으로 올라가기가 쉬울 뿐 아니라 올라가는 길에 큰 나무가 없어서 주변의 풍경을 조망하며 오를 수 있는 산이다. 특히 오르막 중간부터 ‘천국의 계단’이라 부르는 계단이 있는데, 이름처럼 마치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신비스런 느낌이 들었다. 뒤돌아보는 풍경이 너무 멋져서 계단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정상에 오르면 오른쪽엔 한라산과 오름군락이, 왼쪽엔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 조망할 수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백약이오름은 해발 356m의 오름으로 15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쉬운 오름이다. 오름에 자생하는 약초가 백가지가 넘는다 하여 백약이라는 이름이 불렀다고 하는데 실제로 억새보다는 수크렁이라고 불리는 풀(약초로 이용)이 더 많이 보였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백약이오름에서도 근사한 오름 군락의 모습과 멀리 한라산의 모습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백약이 오름에 방문한다면 분화구둘레길도 꼭 걸어보시길 추천한다.
표선면 성읍리는 사실 별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또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정말 맞는가 보다. 오름을 오르고 마을을 걸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느새 성읍을 사랑하고 있었다. 천 년을 살았다는 천년수 앞에서도 고개가 숙여졌고 정의향교앞에 서니 그 옛날 향교에서 글공부 하던 학생들이 상상이 되었다. 예전 같으면 외국관광객으로 가득했을 거리가 다소 쓸쓸하게도 느껴졌지만 잠시 역사 속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아 행복하고 보람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