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한복판, 음력 7월 15일은 ‘백중(百中)’이다. 100가지 곡식을 모두 갖춘 시기라는 뜻으로 농촌에서는 일년 농사의 절반을 마치고 여름철 휴한기에 들어가는 때다. 농부들에게는 논매기를 마치고 푹 쉴 수 있는 여름방학인 셈이다. 주인은 머슴들에게 술과 음식을 베풀고 하루 휴가를 주며, 읍내에는 백중장이 서고 백중놀이를 하는 등 먹고 마시면서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는 축제날이기도 하다. 제주 역시 백중날을 챙긴다. 목축업을 하는 사람은 번성을 기원하는 백중제를 지내고, 마을 본향당에서는 백중 마불림 굿을 치른다. 특히 백중날에는 물맞이라고 해서 폭포수 밑에서 물을 맞는 풍습이 있다. 이날 물맞이를 하면 한 해 잔병이 사라진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백중이 되면 부녀자들이 계곡물에 가서 며칠씩 머무르며 물맞이를 했다. 서귀포 지역에서는 돈내코의 원앙폭포와 바닷가의 소정방폭포가 인기 있는 물맞이 명소였다. 더위도 잊고 잔병도 고치기 위해 시작된 풍습인 만큼 그냥 폭포물을 맞는 것이 아니라 센 물살에 몸을 보호하면서 몸 전체를 골고루 두드리도록 하는 것이 요령이었다. 계곡이 없는 해안 마을에서는 이날 목욕을 하면 피부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시원한 용천수에 목욕을 했다고 한다.
백중은 여름과 가을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이날을 기준으로 바닷물이 여름 물길에서 가을 물길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살찐 해산물이 많이 잡힌다고 밤 늦게까지 횃불을 들고 해산물을 잡는 ‘백중물천’이라는 풍속도 있다. 백중에는 바닷물이 잘 빠져 다른 날 잡기 어려운 소라, 보말, 오분자기 등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