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닥한 제주 마을
- 바다와 용천수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마을,
애월읍 애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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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리는 제주 시내 중심으로부터 서쪽 21km 지점에 자리한다. 취나물 주산지로 유명한 애월리는 예부터 비옥한 토지와 사계절 마르지 않는 용천수를 자랑한다. 환호성이 저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일몰과 더불어 해안 경관이 뛰어나다. 연안항인 애월항이 위치해 있고 애월읍의 행정, 교육, 산업 중심지이다.
- 글, 사진 김윤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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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는용천수 하물
선선한 바람이 아침과 저녁으로 옷깃을 파고든다. 한낮의 태양은 여전히 뜨겁지만 여름밤 내내 잠을 설치게 했던 무더위는 한풀 꺾이는 기세다.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 한편에 조바심이 인다. 여름 바닷길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이 계절을 보내줘야 하다니 서운하다. 하늘보다 더 푸르른 바다가 그립다. 바다와 용천수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마을, 애월리를 향해 혼자 길을 나선다. 애월리의 유래를 알 수 있는 고증자료는 미미하다. 고려 원종 12년(1271년)에 삼별초가 애월에 목성을 구축하였고, 충렬왕 26년(1300년)에 애월현이 설치됐다는 옛 기록으로 살펴보아 삼국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정류장이 ‘애월리’라고 버스 안내 방송이 나온다. 창밖 풍경에 빠져 있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벨을 누른다. 정오를 갓 넘은 시간 버스 밖은 덥다. 한산한 길을 걷는다. 마을 중심에 있는 하물 공원에 도착한다.
하물은 큰물이란 뜻이다. 애월은 방어진인 애월진과 함께 사계절 물이 흐르는 용천수 하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만들어졌다. 하물은 바위틈에서 용출하는 용천수로 애월 포구로 직접 연결된다. 수질이 좋고 물이 풍부해 주민들의 생활용수, 소와 말의 식수, 빨래터, 여성들의 노천 목욕탕으로 사용했었다. 하물 바로 동남쪽에는 남성들의 노천 목욕탕이었던 장공물이 있다. 봉봉해진 하물에서 아이들이 막바지 더위를 씻어낼 준비를 한다. 솟아나는 물이 더없이 맑다. 덩달아 발을 담그고 싶다. 장공물을 둘러본다. 하물과 다름없이 깨끗하다. 용천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무더위가 조금은 가신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두 뺨에 얹고 싶다.
↑하물
↑애월리정류소
바람이 머무는 팽나무와오래된 돌담길
포구로 가려던 발걸음을 멈춘다. 마을 안 돌담길 곳곳에 자리한 아름드리 팽나무가 떠오른다.익숙한 돌담길을 찾아간다. 돌 언덕 위 쉼터에 세 그루의 팽나무가 사이좋게 서 있다. 지난겨울과 다르게 모습이 풍성해져 있는 모습이다. 인근에 사는 삼촌에게 들은 얘기로는 오래전 마을 주민들이 돌무더기 땅 위에 흙을 퍼 날라 팽나무를 심고, 돌을 쌓아 정리하고 애월읍 금성리 마을에서 모래를 가져와서 쉼터를 다듬었다고 했다.
구불구불 길게 나 있는 돌담길을 따라가 본다. 점심시간이라 오가는 삼촌들이 없다. 지붕이 낮은 집들 뒤로 높은 건물이 자리해 고내봉을 가린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쉼터에 앉아 팽나무 그늘에 기댄다. 초록이 짙다. 시원한 바람이 다가온다.
↑마을 안 팽나무 쉼터
삼별초의 역사를 품은 방어유적애월진성
애월 초등학교를 향해 걷는다. 길가에 땅따먹기(사방치기) 놀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어릴 적 평평한 땅만 있으면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던 놀이였다. 요즘도 아이들이 이 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동네 골목에서 뛰놀던 생각이 떠오른다. 빙그레 웃음이 번진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 애월 진 터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진성은 주로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해안 벽에 쌓은 석성으로 제주에는 모두 9개의 진이 있었다. 애월진성은 조선 선조 때 김태정 목사가 축조한 것이다. 원래는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관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성이 있었는데 애월 포구로 진을 옮겨 돌로 새로 쌓았다고 한다. 현재 석성의 일부가 초등학교 울타리로 쓰이고 있다. 애월 포구로 가다 보니 옛 애월진 성곽의 모습이 나타난다. 고개를 들어 돌이 쌓여진 모양새를 올려다본다. 꽤 높게 쌓였다. 성곽 앞 옛 포구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복원된 옛 등대를 살펴본다. 성곽과 포구 그리고 등대, 옛 애월진의 모습을 상상한다.
↑따먹기(사방치기)
↑애월진성
↑옛등대
환해장성을 따라 걷는 길,애월 해안 산책로
포구는 애월항으로 이어진다. 바다를 바라본다.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잠시 지나가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을 건넨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자전거 한 대가 옆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발밑을 살펴보니 자전거 도로에 서 있다.
걸음을 빠르게 움직인다. 사람들이 쉬고 있는 정자가 보인다. 잠시 앉아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다. 갈증이 해소된다. 해신당을 지난다. 조금 더 가면 환해장성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애월 해안 산책로다. 환해장성(탐라장성, 고장성)은 바다로 침입해오는 적을 대비해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해안을 따라 돌로 쌓아 올린 방어유적이다. 19개 해안 마을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산책로 입구 팔각정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복잡한 생각을 풀어내려는 듯 소리 없이 그들 각자의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방해가 되기 싫어 아무도 없는 빈 벤치로 다가선다. 깊고 푸른 바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애월 환해장성과 바다 사이에 난 산책로를 천천히 걷는다.
석양이 아름다운 한담 마을장한철 산책로
올레 입구에 봉선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다. 마당 한가운데에 붉은 고추와 깨가 햇볕에 널려 있다. 썰물로 바닷물이 빠진 곳에서 사람들이 보말(고동)을 줍고 있다. 마을 안 골목으로 접어든다. 낯익은 팽나무와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큰길로 나온다.
해 질 녘을 기다려 한담 마을 장한철 산책로를 찾아간다. 장한철은 조선후기 문신으로 애월 출신이다. 대정현감을 지냈고 표해록을 저술했다.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27호인 표해록은 조선 영조 때 장한철이 과거시험을 보러 가다가 태풍을 만나 일본 오키나와에 표착한 뒤 한양을 거쳐 귀향할 때까지 일들을 기록한 표류기다. 장한철을 기리기 위해 한담 해변에 그의 이름을 따서 산책로가 조성됐다.
한담 포구가 보인다. 푸른 바다가 반짝이고 사람들은 막바지 여름을 즐긴다. 산책로에 적혀 있는 글들을 차근차근 읽는다. 느릿느릿 걷는 사이 붉은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석양이 번지는 바다가 눈부시게 붉다.
↑보말을 줍는 사람들
↑석양이 번지는 한담포구
해안 절경에 반하게 되는 마을,애월리
해변의 사람들, 바다 위 사람들 모두가 지는 해를 바라본다. 바다는 일순간 정지된다. 고요와 사색이 깃든다. 발걸음을 멈춘다. 방금 전까지 푸르른 바다에 환호성을 보냈는데 갑자기 마음이 울컥한다. 아름답다.
“가을이 기다려지지. 가을엔 덥지도 않고, 과일도 곡식도 여물고. 편안한 가을이 빨리 오면 좋지” 낮에 만난 삼촌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삼촌의 바람을 그대로 읊는다.
여름이 지나 평온하고 풍성한 가을이 오면 좋겠다. 산책로를 빠져나와 한담 공원에서 지는 태양을 본다. 해안 절경에 반하게 되는 마을, 애월읍 애월리이다.
삼다 제주와 함께하는 즐거운 이야기, 삼다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