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제주는 유난히 조용하다.
눈보라보다 세찬 건 바람이지만,
그 바람이야말로 이 섬을 따뜻하게 덥히는 에너지가 된다.
‘불을 피우지 않는 난방’
제주가 선택한 새로운 방식은 히트펌프(Heat Pump)다.
자연의 열을 빌려 따뜻함을 만드는, 가장 제주다운 친환경 난방의 형태다.
글 / 사진편집실
공기 속에서 열을 찾다, 공기열 히트펌프
제주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형태는 공기열 히트펌프다.
이 시스템은 바깥 공기의 온도를 흡수해 실내를 따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겨울철에도 평균 기온이 영상으로 유지되는 제주의 온화한 기후에 최적이다.
기온이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기기의 효율이 높고, 제상(除霜) 운전으로 인한 에너지 손실이 적다.
실제 제주도 내 신축 주택과 공공건물의 상당수가 공기열 히트펌프를 적용하고 있으며,
기존 가스보일러 대비 탄소 배출량 60% 이상 절감, 난방비 약 30~40% 절약의 효과를 보이고 있다.
땅속의 온기를 끌어올리다, 지열(지하수열) 히트펌프
제주의 땅은 화산암층이 발달해 있어 지열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특성을 활용한 지열 히트펌프(지하수열 포함) 시스템은 지하 100m 내외의 일정 온도를 열원으로 삼아 냉난방을 수행한다.
특히 제주의 지하수 환경에 맞춰 제주 맞춤형 지하수열 히트펌프 시스템’이 개발되어
제주테크노파크와 한국에너지공단의 공동 실증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땅속의 안정된 열을 이용해 기온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유지비가 낮고 에너지 효율이 매우 높다.
비를 모아 따뜻함으로, 빗물 활용 히트펌프
제주의 또 하나의 실험은 빗물 활용 히트펌프 냉난방 시스템이다.
강수량이 많고 투수성이 높은 제주 지형의 특성을 활용해,
빗물을 저장조에 모은 뒤 열교환기로 순환시켜 냉난방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은 주로 농업용 하우스, 친환경 숙소, 공공시설 등에서 시범 운영 중이며,
‘기후적응형 자연 순환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전력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지역형 난방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제주의 기후가 만든 최적의 에너지 섬
제주는 겨울에도 온화한 해양성 기후 덕분에 히트펌프 효율이 전국 최고 수준을 유지한다.
또한 풍력·태양광·지열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높아 히트펌프를 재생전력과 연계하면 사실상 ‘무탄소 난방 시스템’이 가능하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제주는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Carbon Free Island 2030’을 실현할 가능성을 가진 지역으로 평가된다. 즉, 히트펌프는 단순한 난방 장치가 아니라, 제주가 만들어가는 탄소 없는 겨울의 기술인 셈이다.
자연의 순환이 만들어내는 제주의 따뜻함
예로부터 제주는 바람을 막지 않고 흘려보내며, 돌의 온기를 오래 품어 살아왔다.
이제 그 전통은 바람의 열, 땅의 온도, 빗물의 순환으로 이어진다.
히트펌프는 그 지혜를 과학으로 이어주는 다리이자, 제주의 자연이 스스로 난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겨울의 제주는 여전히 따뜻하다— 불 대신 바람이, 연기 대신 순환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