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순례하며 안녕을
기원한 ‘걸궁’
제주 지역의 고유문화인 걸궁은 음력 정월부터 2월까지 마을 집집을 돌면서 마당밟기와 쇳소리 등으로 집안의 잡귀를 쫓아내고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던 풍물굿이다. 걸공·걸립·궐궁 등으로도 불렸으며, 당굿을 할 때 심방이 무악기를 치며 마을을 순례하는 거리굿에서 출발한 무속 의례이다. 이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육지에서 피난해 들어온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연희 중심적인 놀이 형태로 변화되었다가 풍물굿과 비슷한 형식을 띄는 것으로 변모했다.
걸궁은 정형화된 절차 없이, 집집마다 돌면서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쌀점을 행하고, 집 안의 곳곳에 들어가 쇳소리를 크게 내어 잡귀를 쫓아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행했는데, 이런 이유로 걸궁의 가락과 춤사위는 단순하면서도 투박한 형태인 경우가 많았다.
↑풍물굿패 신나락의 걸궁굿
↑판포리의 걸궁
가락의 경우 단순하면서 변화가 드물고 늦은가락·보통가락·자진가락의 세 가지 유형으로 이루어졌다. 진풀이 또한 기량 높은 판굿보다는 행진식의 길놀이와 단순 진풀이, 잡색(악기 연주자와 놀이꾼을 일컫는 말)들을 중심으로 하는 마당놀이가 주를 이뤘다. 대부분 제주의 노동 현장이나 삶의 모습을 놀이화한 농경모의(農耕模擬)적인 놀이나 무속에서 나타나는 굿놀이의 영향을 받아 액막이 놀이를 펼치는 등 연극적 면모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제주 걸궁은 1960년대 이전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지역 축제를 비롯한 민속경연대회에서 한시적으로 시연되고 있다.
정월대보름 액막이 풍속 ‘도채비방쉬’
도채비는 도깨비, 방쉬는 한자어 방사(防邪)에서 비롯된 말이다. 제주시의 전통풍습으로 대개 연말에 토정비결이나 신수를 보아 새해 운수가 나쁘다고 하면 정월 대보름에 짚으로 인형(허수아비)을 만들고 삼도전거리(세거리)나 바닷가에 모셔가 버림으로써 나쁜 운수를 버리고 액막이를 한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먼저 볏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고 얼굴 부위에 눈, 코, 입 등까지 그려 넣는다.
이를 ‘허재비’라고 한다.
심방을 빌어 집에 제물을 차려놓고 비념을 하고, 이어 <영감본풀이>와 <차사본풀이> 등을 구연한다. 그리고 기원자의 “모든 액을 소멸시켜 달라.”고 기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도채비가 사람에게 범접하여 병을 일으키는 존재이기 때문에 허재비를 내놓으면 도채비가 허재비를 기원자로 알고 허재비에 병을 주고 기원자는 무사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도채비방쉬
그리고 대보름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삼도전거리)나 바닷가에 내다 버리는 것이다. 만약 길을 가다가 방쉬한 것을 보았다면 반드시 돌멩이를 던지고 지나가야 나쁜 액을 대신 하지 않게 된다고 믿었다. 그중에는 액을 대신하는 것이 두려워 불로 태워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도채비방쉬 놀이극
말과 소의 무병안녕을 기원하는 ‘테우리코사’
말을 중하게 여겼던 제주에서 테우리는 목동을 의미한다. 테우리코사는 매년 백중날 자정이 되면 마소를 기르는 사람들이 방목장에 가서 마소의 무병과 안녕을 기원했던 제의를 말한다. ‘코시’ 혹은 ‘코사’는 고사의 제주어다. 떡과 밥, 술 등 제물을 가지고 자기네 소와 말을 가꾸는 목장이 내려다보이는 테우리 동산으로 가 차려간 제물을 조금씩 더 케우리며(흩뿌리는, 고수레를 의미) 그해 목축이 잘 되기를 기원했다.
제상은 깨끗한 곳을 택하여 띠를 깔고 그 위에 차려지며, 말을 잡는 밧줄이나 낙인을 상에 올리기도 했다. 제상에 아기 기저귀를 잘라서 만든 ‘테우리수건’을 올리는 특이한 풍습이 있는 마을도 있었다. 또한 이날 집에서 쉐막(외양간)에서 팥떡을 올리고 심방을 빌어다 입담을 하여 마소의 건강을 빌기도 한다. 한편 축산을 생업으로 하는 마을에서는 ‘테우리멩질(명절)’, ’쉐멩질’이라 하여 집안에서 추가로 제를 지냈다.
↑백중날 테우리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