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만 년 전 화산섬 제주가 빚어낸 생태계의 보고, 곶자왈 동백동산은 제주의 생명과 역사가 맥동하는 천연림이다. 곶자왈은 수풀을 의미하는 제주어 ‘곶’과 돌무더기 위로 뒤섞인 나무와 덩굴을 의미하는 ‘자왈’이 합쳐진 숲으로,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 제주의 동부, 서부, 북부에 걸쳐 존재하는 곶자왈은 독특한 지질구조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보고이기도 하다. 곶자왈 중에서도 동백동산은 생태적 가치가 뛰어나 지방기념물 제10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2011년 람사르습지 지정 및 2014년 세계지질공원의 대표 명소로 지정되었다.
동백동산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동백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오래전 주민들이 땔감을 위해 나무를 벌목하면서도 기름을 짤 수 있는 동백나무는 남겨두었기 때문. 현재는 동백동산이 보호림으로 지정되면서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등이 빠르게 자라 숲을 이루며 성장이 더딘 동백나무를 압도하고 있다. 따라서 1월부터 6월까지 동백이 피어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해를 보기 어려워진 동백나무가 위로만 자라면서 꽃을 피울 여력이 없어 동백꽃을 보기는 어려워졌다. 다만 울창한 천연림 속에서 드물지만 조화롭게 달려있는 몇 송이의 동백은 동백동산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증거로, 개량되고 화려한 동백나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운치와 멋을 선사한다.
동백동산은 용암동굴, 용암언덕, 용암습지 등의 지형을 갖추고 있는데, 다른 곶자왈과 다르게 용암이 식을 때 부서지지 않고 큰 형태를 남겨 물이 빠지지 않고 고인 습지 형태를 형성했다. 이를 ‘파호이호이용암’이라고 부르는데 제주에서는 동백동산이 유일하며, 가장 대표적인 습지 ‘먼물깍’을 포함해 크고 작은 여러 습지들이 동백동산을 생태계의 보고로 만들었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습지들에서는 다양한 곤충과 수생식물, 파충류와 새, 동물이 습지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 제주 도룡뇽과 개구리, 유혈목 등도 쉽게 관찰되며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 위기종인 순채(蓴菜),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자란다는 ‘제주고사리삼’까지 만날 수 있다.
동백동산이 위치한 선흘1리에서는 이런 곶자왈을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새로운 형태의 지속가능한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습지생태교육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매년 다른 주제로 람사르습지의 생태를 체험해볼 수 있는 축제를 개최하며, 2022년 7월에 제 9회 생태문화체험을 성황리에 끝마치기도 했다. 이 ‘선흘곶 생태문화체험 축제’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 정신과 문화가 잘 어우러진 축제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동백동산에서도, 제주의 슬픈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동백동산 내부에는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용암동굴이 여럿 자리해 있는데, 1948년 4·3 당시 인근 마을 주민들은 토벌대를 피해 동굴들로 피신해 은신처로 삼았다. 피신해 있던 중, 물을 길러 나갔던 주민 한 명이 발각되며 도틀굴이라는 동굴에 있던 주민 일부는 총살당하고, 일부는 고문을 당해 결국 목시물굴에 숨어있던 150명의 주민 중 40여 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사시사철 푸르른 동백동산은, 경작이 불가능해 개발이 되지 않아 한때는 버려진 땅이었으나 현재는 그 덕분에 오히려 대자연의 박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제주의 상징으로 남았다. 아픈 역사가 깃든 도틀굴은 물론, 가장 거대한 용암언덕인 상돌언덕, 선흘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숯 가마터, 동백동산의 상징인 거대한 먼물깍과 방사탑까지, 동백동산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은 제주와 자연, 생명과 역사를 상징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습지를 터전으로 살아온 다양한 동식물은 물론, 선흘리 마을 주민들이 귀하게 보호하고 지켜온 동백동산은 앞으로도 다양한 생명들이 어우러져 살아나갈 생명의 숲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숲 안 깊이 살아 숨 쉬는 제주의 심장과도 같은 동백동산을 귀하게 여기고 보호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