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제12회 제주물 세계포럼에 참여한 소감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코로나로 3년간 열리지 못했던 제주물 세계포럼이 다시 개최된다는 소식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간혹 일반 참석자로서 행사에 참여했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포럼 발표자로서 참여하게 된 것 역시 영광이었고요. 제주도민이 의존하는 수자원은 결국 지하 암석 속에 담겨 있는 물이기 때문에 지질이나 지층구조 등과 유관할 수밖에 없는데 제주 지질 연구자로서 물포럼에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 윤석훈 제주대학교 지구해양과학과 교수
포럼에서는 ‘제주도 화산지질 특성’을 주제로 세션에 참여하셨는데요. 어떤 내용이었는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릴게요.
앞서도 언급했듯이 지하수는 땅 밑에 담겨 있는 물이죠. 지질이나 지층구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석회암층에서 추출되는 에비앙과 제주 화산암층에서 추출되는 제주삼다수의 함유된 성분이 서로 다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도는 섬이 생기기 그 이전부터 쌓여있던 지층 덕분에 지금처럼 지하수가 보존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출 수 있어요. 제주도의 생성과정부터 제주도를 이루는 지층구조, 그리고 한라산의 등장과 존재 가치 등이 지하수에 미치는 영향 등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취합해 발표했습니다.
제주도의 지층구조가 지하수와 연관이 있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의 제주도가 있기 전 그 자리는 수심 100m 이내의 얕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로 그 물속에서 180~200만년 전 최초로 화산활동이 일어났어요. 수중에서 화산이 폭발하면 화산재가 생성되는데, 이러한 활동이 계속 반복되면 해저에 화산재가 쌓이게 되죠. 이때 형성된 지층이 바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서귀포층이에요, 그 이후 약 40~50만년 전에는 화산재가 계속 집적되면서 제주도가 서서히 해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이 단계부터는 화산활동이 일어날 때마다 용암이 분출되기 시작합니다.
이 분출물은 현무암으로 대표되는 육상의 화산암층을 이루게 되죠.
육상분출 초기에는 제주도 곳곳에서 화산활동이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약 30만년 전부터 제주도 중심부에 화산분출이 더 집중되면서 대략 1만5천년 전에 한라산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지금의 제주도 지하수는 비교적 얕은 깊이에 있는 화산암층 내에 대부분 함양되어 있는데, 이는 그 아래에 놓인 서귀포층의 역할이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화산암층과 달리 서귀포층은 투수성이 좋지 않아서 담수를 가두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한편, 제주도는 고온다습한 해양성 기단과 차가운 대륙성 기단이 만나는 전선대에 위치하여 적지 않은 비가 예상되는 지역인데, 한라산은 이러한 강우량을 더 증대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는 습한 해양성 기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이때 한라산이 대기 중의 수증기를 물로 바꾸는 일종의 취수장 역할을 하는 것이죠. 해양성 기단이 한라산 사면을 타고 상승하게 되면 수증기가 응결되면서 구름과 비를 생성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다시 말해 한라산이 비를 만들고, 화산암층에 침투된 빗물을 서귀포층이 가두면서 지금의 제주도 지하수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지금 제주삼다수의 수원지가 왜 한라산 국립공원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지 이러한 역사를 듣고 보니 더 잘 이해되는 것 같아요.
한라산이 제주도 중앙에 위치하면서 경관상 보존 가치까지 더해져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어요.
또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며 보존・관리되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이 지하수 관리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해요. 산의 지형 자체가 비를 만들어내고, 자연환경이 보존되는 지역에 빗물이 함양되면서 깨끗한 수질이 유지되는 것이죠. 거기다
화산암층을 투과하며 유익한 미네랄 성분이 다량 함유되기까지 해서 제주 지하수의 수질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주의 모든 지역을 국립공원처럼 보존할 수는 없잖아요. 제주물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에요.
제주 지하수의 현안이 수질과 수량인데 그 중 수질은 지금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현재 지하수의 지속가능 이용량을 산정해보면 사용량 대비 함양량이 부족한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제주도의 물 사용량 증가율을 보면 전국 평균보다 3배 정도 높아서 가까운 장래에 물부족이 지역사회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 사이에는 ‘지하수 위기’라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고 수자원 확충과 혁신적인 물관리 대책 수립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수량이 중장기적 문제라면 수질은 당면과제라고 할 수 있죠. 중산간 개발과 농축산업의 영향 때문에 수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일반 도민들에게도 생소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최근 일부 상수도 취수장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수처리 시설을 갖추어 나가고도 있습니다. 나중에는 원수 수질이 저하된 취수장이 폐쇄되는 사태까지도 닥칠 수 있고, 이건 다시 용수 공급량 감소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두 문제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것이죠.
↑ 윤석훈 교수 저서 및 지구해양과학 전문 서적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제주 지하수를 배태하고 있는 지층들은 대부분 수많은 소형화산체에서 분출한 용암이나 화산재로 구성되어 있어서, 공간적으로 보면 연결성이나 두께가 제한적이고 서로 얽히고 설켜 복잡한 분포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지부나 해외의 대규모 대수층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수리지질학이나 수리수문학 이론을 제주도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질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제주도 지층의 특수성에 기반한 지하수 유동모델 정립과 수자원 탐사 및 개발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제주 맞춤형 연구와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주지역에 특화된 우수 연구인력이 양성되어 지하수 연구와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와 함께 제주 지하수 문제에 대한 사회구성원, 특히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저희 학과 학부생들을 보면 제주 지하수 현황이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드물어요. 대학생이 이 정도의 수준이면 초・중등생은 더 하겠죠.
결국 지하수 문제는 한 번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고 세대를 이어 지속적인 관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지하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나 탐방체험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가능하면 일회성 행사보단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교육과정이 더 효과가 높겠죠?
그렇다면 지하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과정이 제주대학교에도 있나요?
이제 시작하는 단계입니다만 일반대학원에 ‘지하수학 협동과정’이 올해 개설되었습니다. 지하수 및 수자원 분야와 관련 있는 지구해양과학과, 환경공학과, 토목공학과 교수님들이 참여하는 석・박사 과정에 현재 1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이수한 전문인력들이 앞으로 제주도 지하수 연구나 사업, 정책개발 등에 기여할 핵심 인재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주개발공사 또는 제주삼다수에 조언해주실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려요.
제주개발공사를 비롯해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연구원, 농어촌진흥공사 그리고 제주대에 이르기까지 지하수와 관련된 기관의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지하수 현안에 대해 협의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소통하고 정보교류를 하다 보면 지하수 문제에 대해 지금보다도 훨씬 더 혁신적인 대책과 체계적이고 강력한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덧붙여 바람이 있다면,
제주개발공사가 제주 지하수 방면에서만큼은 그 어떤 기관보다도 더 전문적인 연구와 분석 기능을 갖춘 전담부서를 육성하고 운영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제주도의 가장 중요한 자산 중에 하나인 제주 지하수를 활용하는 곳인 만큼 지하수 연구분야에 최우선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