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사진작가 양종훈
삼다소담 독자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주에서 태어난 것을 제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진 찍는 양종훈입니다. ‘삼다수’라는 브랜드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깨끗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제주의 물을 마시면서 자랐지요. 제주 물의 힘으로 지금까지 카메라를 메고 세계 곳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에이즈로 죽어가는 땅 아프리카 오지, 소아암으로 고통 받는 어린아이의 병실,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한계가 공존하는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찾아서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삶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요. 20년 전부터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제주 해녀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님의 앵글은 소외된 사람들의 인생을 향했는데요. 그중 제주 해녀 사진을 찍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제주 바다는 신나는 놀이터였습니다. 그리고 그 놀이터에는 항상 해녀분들이 있었죠. 거친 파도를 헤치고 바다 속에 들어간 해녀분이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오셔서 슬슬 걱정될 때쯤이면 양손에 전복이며 소라를 한가득 안고 올라오셨어요. 어린 맘에도 참 대단하고 멋져 보였습니다. 중학생 때 서울로 이사를 온 후 제주 바다를 잊고 있다가, 다시 제주 바다를 찾았을 때는 그 많은 해녀가 많이 사라졌더라고요.
해를 거듭할수록 해녀의 수가 줄어드는 속도는 빨라졌고, 집단을 이뤄 공동작업을 하는 대신 홀로 해녀 일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고요. 사라져가는 것을 기억하는 것, 후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 앞선 세대의 역할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생각했어요.
↑양종훈 작가가 기록한 제주 해녀의 모습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담긴다고 생각하는데요. 작가님의 해녀 사진 속 해녀들의 모습에서 유독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이방인이 찾아와 불쑥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그들의 삶에 스며드는 일, ‘기다림’이 중요했어요.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해녀 대부분이 10대 때부터 물질을 시작해 수십 년을 해녀로 살아오셨어요. 그 시절에는 해녀의 일을 하찮게 보는 시선이 많았던 만큼, 해녀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컸어요. 그래서 그냥 찾아가서 곁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 얘기도 하고 해녀분들 얘기도 듣고. 파도가 높거나 날씨가 험해 물질을 못 하는 날을 골라서 일부러 찾아갔죠.
그랬더니 어느 날은 “진짜 사진 찍는 교수 맞냐”면서 “맨날 카메라도 안 가지고 오고, 물질도 못 하는 날만 오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날 좋은 날 오면 물질하는 거 찍게 해주냐”니까 웃으시면서 날 좋은 날 한번 오라고... 그렇게 처음으로 해녀분들의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카메라 앞으로 그들을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으로 내가 들어가서 마음을 여는 게 먼저예요. 그래야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법이거든요.
↑다큐사진작가 양종훈
20년 동안 제주 바다, 그리고 바다를 터전 삶아 살아가는 해녀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제주 바다도 사람들이 무차별하게 버리는 쓰레기로 빠르게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주에 서식하는 어종도 바뀌었고 특히 해녀들이 주로 잡던 오분자기가 거의 사라졌어요. 해녀의 수도 점점 줄어들었고 남아 있는 분들도 대부분 고령의 해녀들입니다. 집단으로 작업을 했을 때는 사고가 났을 때 동료가 바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혼자 작업하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작업의 위험도도 높아졌죠. 제주 바다와 해녀를 지키려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개발과 오염으로 인한 변화를 따라잡기가 쉽지는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제주 해녀 사진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으셨나요?
제주 해녀의 위대함을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산소통도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치열하게 감내하는 숭고한 노동. 어떻게 그 오랜 시간 숨을 참아내고, 자기 몸무게보다 무거운 것들을 가지고 뭍으로 나오는지... 그 기술과 지혜, 강인함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해녀의 아버지는 바다로 향하는 딸에게 늘 얘기했다고 해요.
“내려갈 때 본 전복은 잡아도 올라올 때 전복은 따지 말아라.” 마지막 숨만 남겨놓고 뭍으로 올라오는 순간, ‘작은 욕심’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전쟁터인 것이죠. 그래서 해녀들을 촬영할 때는 조명을 사용하지 않아요.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자연에서 오는 빛에 의지하여 셔터를 누릅니다. 평생을 제주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가족을 먹여 살린 해녀의 위대함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 속에서 가장 빛날 테니까요.
↑바다 속에서 더 위대해지는 제주 해녀들
앞으로 작가님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와 함께 제주 해녀를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제주 해녀와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과 호흡하며 그들의 삶과 위대함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지속하고자 합니다. 제주 바다에서는 80세가 넘은 해녀가 생계를 위해 여전히 물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해녀’였고, ‘해녀’이기에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자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해녀분들과의 충분한 대화와 협의가 필요하겠죠.
지자체의 투자와 많은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제주 해녀’라는 브랜드를 구축하고 이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단법인 제주 해녀 문화예술연구협회’를 설립한 것도 제주 해녀의 삶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세계에 알림으로써 ‘제주 해녀’들이 좀 더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단순히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 미술, 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주 해녀의 삶을 아카이빙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제주 해녀는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할 자랑스러운 문화이자, 우리가 지켜내야 할 위대한 유산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