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제주 나들이

한라산이 숨겨놓은 보물 마을, 성산읍 신산리
제주도 남동쪽 성산읍에 위치한 신산리는 지형이 낮아 마을 중심에서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대신, 풍부한 용천수와 매우 청정한 바다를 품고 있어 ‘한라산이 숨겨놓은 보물’로 불려지는 마을이다.
글, 사진 강동희, 참고자료 고병련 저 ‘섬의 생명수, 섬의 산물’
삼다 제주흐르는 제주 나들이 인쇄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저지대의 마을

신산리는 제주에서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몇 안 되는 마을 중의 하나이다. 남동쪽 포구 지역의 지형이 낮아서 한라산이 보이지 않을 만큼 저지대를 이루고 있는 대신에 해안가 일대는 용천수가 풍부하다. 마을 옛 이름은 끝 동네라는 의미의 ‘귿등개’, ‘그등개’, ‘그등애’와 중간 지대의 이름을 딴 ‘신산모루’가 있으며, 한자로는 ‘말등포(末等浦)’ 등으로 쓰였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마을 이름이 신산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시작이자 옛 중심지였던 폭낭거리 산수정(山水亭)은 예로부터 맑고 시원한 우물과 팽나무(폭낭) 고목이 어우러져 마을 주민들이 집회나 풍류를 즐겼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우물은 없어지고 폭낭거리의 일부가 산수정지(山水亭址) 기념비와 팽나무 두 그루와 함께 남아 있다.
폭낭거리에서 북쪽으로 2km 정도 올라가면 마을의 주봉인 독자봉(獨子峰)이 있다. 홀로 떨어져 있어 외롭게 보인다 하여 ‘독자봉’이라고 불리는데 마을에 독자(외아들)가 많은 것도 이 오름의 영향이라는 풍수지리설이 전해진다. 독자봉 남쪽 아래 녹차밭에서 소량으로 생산하는 신산 녹차는 색상이 밝고 선명하며 떫은맛과 쓴맛이 덜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신산리 마을에서 직접 운영하는 마을카페에서 신산 녹차를 맛볼 수 있다.

독자봉 아래 녹차밭
↑ 독자봉 아래 녹차밭
신산리마을
↑ 신산리마을

고(故) 김영갑 사진작가가 사랑한독자봉 풍경

독자봉 전망대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바로 앞 신산교차로 너머에 있는 통오름에서부터 동쪽 바다 끝에 있는 성산일출봉과 우도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고(故) 김영갑 사진작가*도 감탄했다는 독자봉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광과 수려한 모습의 한라산은 성산 10경 중 6경으로 꼽히고 있다. 바로 이웃한 통오름(桶岳)은 전 사면이 완만한 기복을 이루면서 둥글고 낮은 5개의 봉우리가 화구를 에워싸고 있는데, 독자봉처럼 산책 삼아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고 사방이 탁 트인 시원한 멋진 풍경들을 볼 수 있다. 오름을 내려와 시원한 바다 풍경을 낀 신산리 해안도로의 동쪽을 향했다. 동쪽 온평리 마을 경계선에는 환해장성(環海長城)의 흔적이 있다.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300여리(약 120km)에 쌓은 석성(石城)으로, 삼별초군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신산환해장성의 전체 길이는 600여 미터로 온평환해장성 제4지점과 연결된다. 현재 환해장성 일부 구간이 복원되어 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에서 바다와 어우러진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 통오름 산책로 입구 ↑ 통오름 산책로 입구
  • 통오름 정상에서 본 풍경 ↑ 통오름 정상에서 본 풍경
  • 신산환해장성 ↑ 신산환해장성
고(故) 김영갑 사진작가(1957~2005)
제주의 자연 풍경에 몰두하여 많은 사진 작품을 남긴 사진작가로 루게릭병 진단 후에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제주의 자연을 알렸다. 폐교된 삼달분교를 개조한 김영갑갤러리두모악에 그의 모든 작품이 보관, 교체 전시되고 있다.

신이 숨겨놓은 신산리의 산물들

해안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동쪽 마을 바다에 신이 숨겨 놓은 산물인 ‘만물’이 있다. 양질의 용천수가 솟는 조그마한 만이라고 해서
‘만물’이라고 불린다. 맑고 투명한 물빛에 한여름에도 5분 이상 견디기 힘들만큼 물이 차가워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동네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휴가객들이 용천수 욕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즐겨 찾는다.

서쪽 마을 해안가 앞에는 식수뿐만이 아니라 목욕, 빨래, 우마용 물로 사용하던 ‘우알’이 있다. 우알은 위쪽이라는 뜻의 제주어 ‘우’와 아래쪽이라는 뜻의 제주어 ‘알’이 합쳐진 말이다. 용천수가 흘러 바다로 내려가는 곳 위아래로 용천수 웅덩이가 두 곳이 있는데, 우(위쪽) 용천수 웅덩이는 깊이가 얕아 주로 빨래터로 사용하여 ‘빨래통’이라고 불렸고 좀 더 깊은 알(아래쪽) 용천수 웅덩이에서는 주로 목욕을 즐겼는데 얼음처럼 차가워 ‘얼음통’이라고 불렸다.

↓ 만물
만물

우알에서 해안길을 따라 서쪽으로 약 800m 정도 더 가면, 만물 못지않은 큰 물로 알려진 용천수 욕장 ‘농개(농어개)’가 있다. 농개(농어개)는 농어가 많이 들어오는 어장으로, 예전 이곳의 목(입구)을 막아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았었다. 농개(농어개) 또한 만물처럼 큰 암반으로 둑을 쌓아 바닷물과 구분하였는데, 산에서 내려와 현무암 틈에서 솟아나는 시원한 담수는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어 매년 피서객과 낚시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농어(농어개)에서 해안길을 따라 서쪽으로 약 300m 정도 더 가면 주어동 포구 근처에 ‘분드릿개’가 있다. 여기서 나오는 용천수를 ‘분드릿개물’이라고 부르는데, ‘분드르’는 주어동 포구의 옛 말이고 ‘드르’는 ‘들’이라는 뜻의 제주다. 즉 ‘마을과 떨어져 있는 들판이 있는 포구의 주변에서 솟아나는 물’을 뜻한다. 특히 바다를 사이에 두고 주어동포구 맞은편에 위치한 분드릿개물의 한 용천수는 작은 궤(동굴의 제주어)처럼 생긴 현무암 틈에서 솟아나는데, 자연적으로 형성된 직경 3m 정도의 원형의 웅덩이에 용천수가 모여들었다가 바다로 빠져나간다.

  • 우알 위쪽의 빨래통 ↑ 우알 위쪽의 빨래통
  • 용천수욕장 농개 ↑ 용천수욕장 농개
  • 주어동 포구 바다 맞은편 분드릿개물 ↑ 주어동 포구 바다 맞은편 분드릿개물
  • 큰 암반으로 둑을 쌓은 농개 ↑ 큰 암반으로 둑을 쌓은 농개

신산리의 보석 같은 용천수들

신산리 동쪽 마을의 ‘만물’, 서쪽 마을의 ‘우알’, 마을 서쪽 끝에 있는 ‘농개(농어개)’와 ‘분드릿개물’ 모두 평상시에는 모습을 보기 어렵고 썰물 때를 잘 맞춰야만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용한 자연친화적인 산물이라서 여전히 힘이 좋고 양도 많다. 썰물이 최고조일 때는 급류처럼 큰 파도를 일으키며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용천수의 장관에 놀랄 수밖에 없다. 이 용천수 모두 신산리가 숨겨 놓은 보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을 둘러보니 어느덧 늦은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신산리 마을 앞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니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바다의 풍경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영하고 낚시하며 놀던 어릴 적 추억의 장면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맑고 투명하게 빛나며 늘 변치 않게 솟아 흐르는 용천수처럼, 마을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후손들에게도 더욱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아끼고 잘 지켜나가야 하겠다는 다짐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해본다.

강동희 삼다소담 리포터즈(도민기자)
강동희 삼다소담 리포터즈(사내기자)
제주개발공사 생산1팀 소속으로 현재 삼다소담 리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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