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휴일 오후, 차를 몰아 교래리로 향했다. 5·16도로의 구불구불한 길을 나오자마자 바로 넓은 유채꽃밭이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산속에 숨어 있는 노란 물결이 마치 숨어 있는 황금을 발견한 듯 나의 마음도 한층 즐겁다. 그렇게 주위를 감상하며 교래리에 들어서니, 새삼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띈다. 교래리는 전체적으로 다른 중산간 지역보다는 큰 오름이 없고, 완만한 평지가 많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넓은 초원 위에는 광활한 하늘이 지붕인 양 드리워져 있다. 멀리 ‘교래 삼다수 마을’의 간판이 눈에 보인다. 교래 삼다수 마을은 우리 제주개발공사와 교래리 마을의 협력으로 2018년 1월 ‘지질공원 대표명소’로 지정되었다. 그만큼 지질연구에 대한 가치가 큰 동네이다. 그리고 먹거리로도 유명한데, 특히 교래 토종닭 백숙이 유명하여 ‘토종닭 유통 특구’로도 지정되어 있다.
‘교래 삼다수 마을’ 입구를 지나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교래 보건소’가 보인다. 휴일이라 아무도 없고 태극기 혼자 펄럭이는 모습이 어딘가 외로운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시내의 병원까지 다니기 힘든 마을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시설이라 생각된다.
그 길을 따라 더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검은색 지붕으로 된 어르신들의 쉼터인 ‘교래리 노인회관’이 있다. 조경이 잘되어있는 나무들과 마당의 팔각정이 교래리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편안한 쉼터가 되기에 충분한 것 같다. 나도 장시간 여행에 피로해져 있던 차에 팔각정을 보자마자 안에 들어가 잠시 앉아서 쉬어 본다. 조용한 동네이면서 주변의 고목과 그리고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조금의 휴식을 취하고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조천초등학교 교래분교’로 향했다. 학생 수 19명의 작은 학교이지만 1964년에 개교한 역사가 있는 학교이다. 게다가 이곳 초등학교 부지는 교래리에 사시던 ‘독지가 고성춘님’께서 교래리 마을 2세들의 교육을 위해 땅 775평을 기증한 곳에 건립한 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알고 다시 학교를 바라보니 진한 감동이 느껴졌다.
독서하는 소녀상 뒤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교실 안의 작은 책상과 의자. 내가 너무 커진 건지, 아니면 책상과 의자가 작아진 건지 알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 시절에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친구들과 뛰어놀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 왜일까?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교래리 복지회관이 나오고, 그 바로 옆에는 ‘교래리 본향당’이 있다. 이 본당은 당산신과 산굼부리 서당국 고씨 할망을 모시는 당인데 생산, 죽음, 호적, 수렵을 관장한다고 하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말을 타고 지나는 사람도 말에서 내려 본향당에 빌고 가야 탈이 없을 정도로 영험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기운에 이끌려 나도 고씨 할망에게 빌기 위해 말 대신 지금의 말 역할을 하는 차에서 내려 빌어본다. 본향당 안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문이 잠겨 있고 들어갈 수 없게 막혀 있어 내부 모습은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보니 시간이 벌써 저녁이 되었다. 차에 올라 집으로 향하는데 멀리 저녁노을이 보인다. 광활한 대지 위에 떠 있는 붉은 노을의 웅장함에 매료되어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바쁜 삶 속에서 지쳐있던 나를 위로해주는 것만 같다. 그런 휴식과 안정을 느낄 수 있는 마을, 그리고 재충전을 해주는 곳이 교래리 마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