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물열전

제주 자연을 거닐며 그리다
화가 홍진숙
제주 바당길을 다섯 바퀴째 걸으며 떨어진 잎사귀 하나, 흐르는 물줄기 하나,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모으고 모아 화폭에 옮기는 이가 바로 홍진숙 작가이다. 때로는 목판에, 때로는 아크릴에, 또 때로는 종이 위에 손닿는 대로 제주의 자연을 오롯이 담고 있다.
. 편집실, 사진. 정익환
공사 소담제주인물열전 인쇄

내 삶의 터전이 제주라오

제주 탑동에서 태어나 솟구치는 용천수 아래서 보말을 잡고 물놀이 하며 컸다. 검고 예쁜 큰 돌이 지천에 깔려 있고, 이름 모를 나무와 꽃이 무성했던 땅 위에서 귀한 줄도 모르고 어린 시절을 누리고 느끼며 보냈다. 그림을 배우기 위해 뭍으로 떠났던 짧은 시간을 제외하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는 그렇게 경험한 것들을 자양분 삼아 목판에 아로새기는 중이다.

제주자연을 표현하는 물감들
↑제주자연을 표현하는 물감들
제주를 담아내는 홍진숙 화가
↑제주를 담아내는 홍진숙 화가
그림을 배우려고 대학을 다녔던 때를 빼면 줄곧 제주에서 산 제주사람이에요. 당연히 제 작품의 근간은 제주 그 자체일 수밖에 없죠. 지금은 너무도 많이 그리고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서운한 마음이 크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작품에 담아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놓치기 싫어서.

그의 말대로 제주는 끊임없이 변모하는 중이다. 개발이 이뤄지기도 하고, 자연의 변화에 따라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 것들도 많아지고 있다. 삶의 터전이 변화하는 과정이 늘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시대의 흐름을 막아내진 못해도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있다고 믿는다.

누구는 제가 쉬지 않고 일한다고 해요. 다작하는 작가, 맞아요. 제가 어린 시절 보고 자란 제주는 정말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였는데, 지금은 관광지로서의 색채가 너무 또렷해졌잖아요. 물론 그 나름의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저는 원천적인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의 자연을, 제주를 최대한 많이 그려 남겨놓고 싶어요. 그건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걷고, 보고, 느끼고, 그린다

대학에서는 한국화를 전공했던 홍진숙 작가는 대학원에서는 판화를 배웠다. 원인 모를 예술에 대한 갈증이 판화를 만나 해소되는 느낌을 받으면서 목판 작업에 몰두했다. 회화란 단 한 장의 그림으로 남는다는 희소성이 있지만 의도한 그대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판화는 찍어내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판화의 원리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목판을 파내고 프레스기로 눌러 종이에 찍어내는 것이죠. 이때 판과 종이라는 매체 사이에 약간의 노이즈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 매력이 참 오묘해요. 제 의도와는 다른 표현이 섞이면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리는 기분이 들어요.
가장 최근에 찍은 판화 작품
↑가장 최근에 찍은 판화 작품
홍진숙 화가의 작업대
↑홍진숙 화가의 작업대

판화의 매력에 더해 그의 작품이 남다른 점은 바로 생동감이다. 그는 작업실에 앉아 골똘히 구상하는 것보다 밖에 나가 걷고, 직접 눈을 본 것을 표현하는 것에 더 큰 감흥을 얻는다. 걷다가 시선을 잡아끄는 풍경을 만나면 그 자리에 앉아 그리기도 하고, 느낀 것은 메모해두기도 하면서 그렇게 세상과 만난다.

지금 제주 바당길을 다섯 번째 돌고 있어요. 처음에는 건강 때문에 걷기 시작했는데, 걷다보니 작품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더라고요. 2019년부터 곶자왈 동호회에 가입해 회원들과 곶자왈 탐방에 나서고도 있는데, 그때 주운 잎사귀와 고사리 등을 모노타이프 기법으로 표현해 [섬을 걷는 시간]이라는 작품전을 열기도 했어요. 덕분에 제주의 토종 식물이나 식생을 표현하는 작업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섬을 걷는 시간> 제주도립곶자왈
↑<섬을 걷는 시간> 제주도립곶자왈

진짜 제주를 보여주고 싶어요

‘걷는다’는 행위는 홍진숙 작가에겐 ‘진짜 제주’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준비동작이다. 곶자왈을 걸으며 담아낸 <섬을 걷는 시간(2020)>을 통해서는 사라져가고 있는 제주의 토종 식생과 새롭게 터전을 넓혀가고 있는 외래종의 모습 등 제주의 환경변화를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화공 김남길 선생이 남긴 탐라순력도를 현대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탐라순력을 거니는 시간(2021)>을 통해서는 탐라순력도 속 마을을 직접 다니며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도를 했다.

“그냥 걷는 것보다 살피며 걸으면 예전엔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하게 돼요. 곶자왈도 예전에는 토종 식생의 보고였는데, 이제는 멸종해서 볼 수 없는 종도 많고, 처음 보는 외래종도 늘었어요. 탐라순력도를 보며 찾은 마을의 모습도 그랬어요. 예전엔 용천수가 펄펄 솟아나는 곳인데 이제는 물이 말라 터만 남은 곳도 있고, 재개발되어서 모습이 달라진 곳도 많더라고요.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죠.”
<탐라순력을 거니는 시간> 고원방고
↑<탐라순력을 거니는 시간> 고원방고

앞선 전시들을 준비하며 경험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올해에는 <곶자왈의 숨, 용천수의 꿈>이라는 작품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홍진숙 작가가 생각하는 진짜 제주의 모습을 담아낼 계획이다. 특히 용천수는 제주만이 가진 보물, 꼭 지켜내야 할 자산이라고 말한다.

용천수는 제주 사람들에겐 생명수에요. 바다에서 솟아나오는 물은 뭍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만의 선물이죠. 작품을 준비하며 답사를 다니고 있는데 용흥동의 운랑천처럼 옛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도 있는 반면 큰강정물이 있던 강정천은 2~3년 전부터 물이 말랐다고 해요. 지도에도 나오지 않아 마을 어른들께 물어물어 찾은 용천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론 많이 줄었어요. 그 부분이 가슴이 아프죠.
수채화로 표현한 곶자왈
↑ 아크릴로 표현한 곶자왈
삼다 제주와 함께하는 즐거운 이야기, 삼다소담

Quick menu

삼다소담 웹진 구독신청

삼다소담 웹진 구독신청 하시는 독자분들에게 매월 흥미롭고 알찬 정보가 담긴 뉴스레터를 발송하여 드립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메일 주소 외의 정보는 받지 않습니다.
구독신청을 취소하시려면 아래 [구독취소신청] 버튼을 클릭하신 후 취소신청 이메일을 작성해주세요. 구독취소신청

삼다소담 웹진 구독취소

삼다소담 웹진 구독을 취소하기 원하시면 아래 입력창에 구독신청하신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 후
[구독취소] 버튼을 눌러주세요.
구독을 취소신청하신 경우에는 다음 익월 발행호부터 해당 이메일로 뉴스레터가 발행되지 않는 점을 참고해주세요. 구독신청으로
구독 지난호 페이지상단으로이동

삼다소담 웹진

2024년

  • 삼다소담 vol. 46

    [vol. 46]

  • 삼다소담 vol. 45

    [vol. 45]

  • 삼다소담 vol. 44

    [vol. 44]

  • 삼다소담 vol. 43

    [vol. 43]

  • 삼다소담 vol. 42

    [vol. 42]

2023년

  • 삼다소담 vol. 41

    [vol. 41]

  • 삼다소담 vol. 40

    [vol. 40]

  • 삼다소담 vol. 39

    [vol. 39]

  • 삼다소담 vol. 38

    [vol. 38]

  • 삼다소담 vol. 37

    [vol. 37]

  • 삼다소담 vol. 36

    [vol. 36]

2022년

  • 삼다소담 vol. 35

    [vol. 35]

  • 삼다소담 vol. 34

    [vol. 34]

  • 삼다소담 vol. 33

    [vol. 33]

  • 삼다소담 vol. 32

    [vol. 32]

  • 삼다소담 vol. 31

    [vol. 31]

  • 삼다소담 vol. 30

    [vol. 30]

  • 삼다소담 vol. 29

    [vol. 29]

  • 삼다소담 vol. 28

    [vol. 28]

  • 삼다소담 vol. 27

    [vol. 27]

  • 삼다소담 vol. 26

    [vol. 26]

  • 삼다소담 vol. 25

    [vol. 25]

  • 삼다소담 vol. 24

    [vol. 24]

2021년

  • 삼다소담 vol. 23

    [vol. 23]

  • 삼다소담 vol. 22

    [vol. 22]

  • 삼다소담 vol. 21

    [vol. 21]

  • 삼다소담 vol. 20

    [vol. 20]

  • 삼다소담 vol. 19

    [vol. 19]

  • 삼다소담 vol. 18

    [vol. 18]

  • 삼다소담 vol. 17

    [vol. 17]

  • 삼다소담 vol. 16

    [vol. 16]

  • 삼다소담 vol. 15

    [vol. 15]

2020년

  • 삼다소담 vol. 14

    [vol. 14]

  • 삼다소담 vol. 13

    [vol. 13]

  • 삼다소담 vol. 12

    [vol. 12]

  • 삼다소담 vol. 11

    [vol. 11]

  • 삼다소담 vol. 10

    [vol. 10]

  • 삼다소담 vol. 9

    [vol. 9]

  • 삼다소담 vol. 8

    [vol. 8]

  • 삼다소담 vol. 7

    [vol. 7]

  • 삼다소담 vol. 6

    [vol. 6]

  • 삼다소담 vol. 5

    [vol. 5]

  • 삼다소담 vol. 4

    [vol. 4]

  • 삼다소담 vol. 3

    [vol. 3]

  • 삼다소담 vol. 2

    [vol. 2]

2019년

  • 삼다소담 vol. 1

    [vol. 1]

2022년

2021년

2020년

APP
다운로드
오늘그만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