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섬 제주는 토양 특성 때문에 비가 오더라도 빗물이 그대로 스며들어버린다. 바닷가 용천수 인근은 사정이 나았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식수가 넉넉지 못해 물을 길어오는 일이 중요한 일과로 자리잡았다. 물구덕, 물항, 물팡 같은 생활용구가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중산간 지역은 용천수가 적어 더욱 물이 부족한 편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촘항’이다. 물을 얻기 위해 먼 길을 가야 하는 데다가, 그마저도 쉽게 구할 수가 없는 중산간 지역에서 자연 그대로인 빗물을 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빗물을 이용한 ‘촘항’은 단순하지만 지혜로운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생활문화유산이다. 잎이 넓은 나무 밑에 커다란 물항아리를 두고, 나무 둥치에 ‘촘’을 걸어놓은 것을 ‘촘항’이라고 불렀다. ‘촘’은 중산간 지방에서 많이 자라는 풀인 ‘새’를 댕기머리 모양으로 엮은 것이다. 잎이 넓은 나무 밑에 두는 것은 빗물이 큰 잎을 타면 더 많이 모이기 때문인데, 이렇게 모인 빗물이 허투루 땅에 떨어지지 않고 ‘촘’을 타고 물항아리에 담긴다. 그 과정에서 불순물이 걸러져 깨끗한 물만 남게 되고, 이 물은 용천수보다 유지 기간이 길고 맛도 좋았다고 한다. 또 ‘촘항’에는 개구리를 넣어 먹을 수 있는 물인지 아닌지를 구분했다고 한다. 어떤 나무에 촘을 걸었는지, 물항아리가 몇 개인지에 따라 그 집안의 생활수준을 구분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