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제주 여인들은 대부분 해안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를 찾아 물허벅에 지고 물을 긷는 일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이렇게 길은 물은 온 가족이 함께 써야했기에 한 방울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첫 물은 보리쌀을 씻는데 쓰였다. 논농사를 짓기에 좋지 않았던 제주 땅에서 쌀은 귀한 것이었고 대부분 보리쌀을 주식으로 끼니를 마련했다. 보리쌀을 씻은 물은 나물 등을 씻는 물로 쓰였다. 한 바가지로 두 번, 세 번 씻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물까지 씻은 세 번째 물은 걸레 등을 헹구는 데 썼다.
용천수의 물도 쓰임에 따라 구분했다. 먹는 물, 채소 씻는 물, 빨래하는 물, 목욕하는 물 등 마을마다 규약이 정해져 있기도 했다. 여인들이 물허벅을 지고 물을 나르는 것 외에도 물을 얻는 방법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참항을 두는 것이다. 참은 빗물이 항아리에 담기기 위해 해 놓은 것을 뜻한다. 나무 밑에 항아리를 두고 짚을 넓적하게 엮어 나무줄기를 따라 항아리에 빗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했다. 물 절약 문화는 제주 속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얼굴 씻을 때 물 많이 쓰면 저승 가서 그 물 다 마셔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 이처럼 옛날에는 물을 아끼지 않으면 속담에 빗대어 혼나기 일쑤였다.
물이 귀한 것은 내 집 만의 일이 아니었기에 제주의 물 절약 문화는 물 나눔 문화로도 이어졌다. 큰 일이 있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서로 물을 대주며 물을 나누어 썼다. 그것이 바로 물 부조 문화다. 이웃집에 대소사가 있으면 다른 이웃들이 대신 물 항아리를 채워주었다. 물 허벅을 나를 여유가 없는 이웃을 위해 일을 나누어 해준 것이다.
화재가 일어났을 때도 물 부조 문화가 빛을 발했다. 불이 났다고 하면 이웃들이 모두 물 허벅에 물을 담아와 불을 끄는데 일조했다. 집을 지을 때도 물을 나누는 문화가 있었다. 당시에 초가집을 지을 때 찰흙을 뭉쳐가지고 볏짚을 썬 다음 흙에 버무려서 담벼락에 붙이는 식으로 작업을 했는데, 이때 물이 필요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집을 짓는 이웃을 위해 자기 집 물을 내어다 보태주었다.
한 바가지 물에 곡물도 씻고 나물도 씻고 마지막에 걸레 씻는 물로 마무리할 정도로 물을 아끼면서도 제 이웃에게 나누는 물은 아낌없이 썼던 제주 사람들. 시대에 따라 물의 용도와 쓰임은 달라져왔지만 서로를 돕고 위하던 마음은 여전히 제주인 가슴 속 깊이 자리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