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해안 산책로를 잠시 벗어나 마을 안길을 걷는다. 김녕리를 걸으면 환해장성을 비롯해 옛 등대, 올렛담, 축담, 울담, 흑룡만리 밭담 등 여러 유형의 제주 돌문화 유적을 마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을 안길도 검은 돌담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강한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쌓여진 돌담은 높고 튼튼하다. 쉼터가 보인다. 사람이 없는 빈자리에 잘생긴 폭낭(팽나무) 하나가 훤칠하게 서 있다. 폭낭 옆을 지키는 소독통의 파란 색깔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마을 삼촌들이 요새는 무슨 농사를 짓고 있는지 사뭇 궁금하다. 길을 걷다 보니 밭에는 마농(마늘)이 많이 심어져 있다. 올레 안에 마농종 말리는 풍경도 간간이 보인다. 쉼터에 잠시 앉는다. 멀리서 동네 삼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해녀 삼촌들이다. 물질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등에 짊어진 자루의 무게가 조금은 버거울 만도 한데 웃음꽃이 지지 않는다. 마치 ‘삶은 이런 거다’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마을 안 구불구불 이어진 검은 돌담길을 걷고 걷다가 다시 바다로 향한다. 바다 앞을 바라보는 빈 의자들이 마음에 걸려서일까. 지난해 계절을 생각하니 전에 없이 바다가 쓸쓸하다. 김녕 서포구로 발걸음을 재촉한다.